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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고칠 것 없는 일기

집념은 때론 바람직한 결과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것을 얻기 위해선 남다른 고집과 인내가 우선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익히 잘 알면서도 실천엔 게을렀다. 지난 삶을 뒤돌아보니 어떤 목표에 대한 신념을 지키지도 못했을뿐더러, 성과를 얻기 위한 노력도 별반 행하지 못한 듯하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이 점이 못내 뉘우쳐진다. 무엇보다 지난날 새해에 세웠던 한 해 계획 이 작심 사흘이 되곤 하였다. 이제라도 새해 첫날 세웠던 설계를 하나하나 실행할 생각이다.

 

그 중 한 가지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일이다. 하루 겪은 일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주제로 그것에 대한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적는 게 일기 글 아닌가. 이렇듯 일기 쓰기 작법을 잘 알면서도 지난날 정작 나의 혼을 깊이 응시하는 일기 쓰기엔 소홀했다. 이제는 일상 속에서 매일 겪은 일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백지 위에 토로하련다.

 

이게 아니어도 일기 글 역시 문학 작품으로 승화되기도 하잖은가. 일기 문학이 성했던 국가는 아마도 프랑스이지 싶다. 학창 시절 까닭모를 정신적 방황과 고뇌로 힘들 때 깊은 감명과 위로를 받은 스위스 사상가 헨리 프레데리크 아미엘의 '아미엘의 일기'다.

 

이 외에도 프랑스의 작가 쥘리엥 그린의 1978년 발간한 '시간의 아가리 속에' 라는 일기 글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 일기 글들은 쥘리엥 그린의, "나의 일기는 한마디도 고칠 것이 없다" 라는 언술에 전적 공감할 만큼 좋은 내용이 전부다.

 

특히 1950년 6월 28일자 일기를 살펴보면, "48시간 전에 한국은 침략을 당했다. 뉴욕의 어느 신문은 '우리는 한국을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 글에서 당시 미국이 전란을 맞아 난관에 봉착한 우리 국민들에게 보낸 일부의 싸늘한 시선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로보아 어디선가 읽은 내용처럼 일기 글은 개인적 삶의 고투苦鬪에 의한 정신사이자, 주요한 사안의 사서史書란 말이 맞는 성 싶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비록 프레데리크 아미엘이나 쥘리엥 그린처럼 광휘光輝 있는 일기 글은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써온 일기장을 새삼 들춰본다. 지난 시간 코로나19로 돌파감염을 비롯 오미크론 감염으로 사회적 거리 및 백신접종 국민 적극 동참과 방역패스 강화 등이 강조되었던 내용도 수록됐다.

 

이런 시국이어서인지 2020년 2월 3일 자 일기 글이 유독 눈길을 끈다. 이 날 중국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361명이 사망했다고 쓰여 있다. 이 날 우리나라에선 15명이 감염 돼 제주도에선 중국 관광객들을 입국 제한한다는 뉴스 내용도 들어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대적한지 몇년 만에 당시 일기를 대하노라니 왠지 감회가 새롭다. 이때 오늘날 코로나19가 이토록 많은 감염자 및 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할 줄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이에 반하여 감격적인 내용도 기록 됐다. 2020년 2월 10일 자 일기 글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의 권위 있는 영화상 오스카상을 거머쥔 내용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국제영화상에 이어 감독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내용을 쓰며 그가 국위 선양을 했다는 기쁨이 넘치는 소회도 적혀 있다.

 

2018년 6월 12일자 일기 글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 회담에 관한 내용도 있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열린 북·미 회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마주한 북한 김정은의, "그동안 편견과 그릇된 관행이 걸림돌이 돼 여기까지 오는데 힘들었다" 라는 그의 말이 매우 인상 깊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평소 쥘리엥 그린의 일기 글을 모방하고 싶었다. 그의 유니크 한 작풍의 소설에 반해서다. '타락한 육체로 악에 물든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라는 가톨릭교 적 주제의 작품성에 매료 돼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22권의 완본이 발간된 프랑스의 에드몽 루이 앙투안 위오 드 공쿠르 형제가 쓴 일기처럼 시대적 조류 및 풍속을 한 눈에 간파할 수 있는 그런 가치의 일기 글을 적음하고자 한다.

 

이러한 글들이 앙드레 지드 일기처럼 훗날 나의 문학 작품성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말로 작용할지도 모르잖은가. 그러므로 향후 한국 문단 사에 길이 남는 일기문학日記文學을 꾸릴 꿈을 지녔다면 문인으로서 결코 과한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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