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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위대한 바보


다람쥐는 바보이다. 애써 구한 도토리를 땅 속에 묻어두고 곧잘 그 장소를 잊곤 한다. 하지만 이 덕분에 나무 아래 묻힌 도토리는 흙의 보탬이 되어 무성한 숲을 이루는데 한 몫 한다. 이로 보아 푸른 숲을 이룰 나무나 풀들에게 다람쥐의 약지 못한 행동이 일조하는 셈이다. 이런 다람쥐의 건망증을 떠올리노라니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이태준 소설가의 소설 '달밤'이 문득 생각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가슴을 흔들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 작 중 인물인 황수건에 대한 작가의 인물 조형성을 뛰어나게 한 소설 작법에 반해서이다. 하여 젊은 날엔 소설가 꿈을 키운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 속 주인공인 황수건에게 왠지 모를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주인공 황수건은 세태의 변천에 적응 못하는 바보이자 지능이 낮은 인물로 묘사 되지만 그 점이 한껏 필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매료된 것은 각박한 세상사에 부딪쳐 아픔을 겪는 모습을 작중 화자인 '나'에 의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한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이다. 바보는 시대를 막론하고 남의 밥그릇 넘겨다보는 일엔 매우 서투르다. 그런 일엔 엄두도 못 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밥그릇도 제대로 못 챙기기 일쑤이다.


또한 정상인들은 자신들 욕심 때문에 철저히 많은 가리개를 준비하지만 바보인 황수건은 가면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자신을 남 앞에 완전히 노출시키는 일에 주저치 않고 있다. 오죽 위인이 반편이면 학교 급사 자리도 남에게 빼앗기고 신문 배달원 보조 자리도 남에게 내 주었으랴. 심지어는 나중엔 자신의 아내마저 곁에서 달아나게 했잖은가.

 

뜬금없이 이 자리에 소설 이야기가 나온 것은 요즘처럼 이문 남는 일에만 혈안이 돼 있는 세태에 소설 속 주인공 황수건 같은 바보가 못내 그리워서 이다. 다행히 가끔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바보들 이야기가 한줄기 소낙비처럼 메마른 마음 밭에 습윤을 안겨주고 있어서 적으나마 세상 살 맛 난다.

 

어느 할머니께서 막대한 돈을 대학교에 기부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그것이다. 몇 해 전엔 우리 고장 출신 줄기 세포 연구 기업 설립자인 '알 앤 엘 바이오' 라정찬 박사의 시가 1000억에 해당하는 개인 재산 90%를 사회에 환원한 게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 혈육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우선적으로 선택 했다. 이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타인에 대한 이타심이 크기에 큰 돈을 사회의 손에 선뜻 쥐어 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바보 아닌가. 내 것 아까운 줄 모르고 남의 손에 덥석 자신이 지닌 막대한 재산을 넘겼잖은가.

 

한 때 바보 개념이 엉뚱한 곳으로 비약돼 항간에 회자 된 적이 있다.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람을 ‘바보’라고 칭했다. 아버지가 딸을 너무 사랑하면 딸 바보, 아내만 오로지 사랑하면 아내 바보 등등이 그것이다. 이로보아 사회에 정과 사랑을 기부한 어느 할머니나 라정찬 박사도 오직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타인만 바라본 이 시대의 위대한 바보임엔 틀림없다.

 

바보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밝히자면 머리가 둔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할머니나 라정찬 박사는 자신이 지닌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전부를 두 손에서 미련 없이 놓아버린 진정한 바보였다. 그래 손톱 만큼도 자신의 것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영악한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노래에도 순정적으로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뜻에서 인지 바보라고 자처하는 노래가 있다. 유행가 '아파트' 중 노래 가사에 나오는 바보가 그것이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쓸쓸한 너의 아파트'-

 

이 노래 가사엔 자신 곁을 떠난 연인에 대한 미련 때문에 바보가 됐다고 자조하고 있다. 미련은 어찌 보면 탐욕의 그물이다. 사랑도 너무 집착하면 스토커가 된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닐 것이다. 또 있다. 돈도 명예도 이 미련이라는 그물에 걸리기만 하면 그래서 몹시 구린내가 나는가 보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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