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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최대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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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항상 걸음이 느린 탓인가 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사회적응력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거짓말엔 매우 서투르다. 어찌 보면 처세에 능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가끔 선의일지라도 거짓말을 하려면 갑자기 코끝이 간질거리고 말조차 더듬곤 한다.


사실 무엇이든 솔직하면 득보다 실이 많은 세태여서일까. 평소 마음에 없는 언행을 못하는 탓에 때론 손해를 보곤 한다. 그럼에도 사노라면 마음에 없는 언행을 행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참으로 속이 불편하다.


이럴 땐 솔직히 필자 같은 경우 본래 모습을 가리는 몇 개의 너울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가리개를 전혀 준비 못한다는 사실이다. 너무 솔직하고 때론 에둘러 말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직설적인 면도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말이 고우냐? 비단이 고우냐” 할 경우 비단보다 더 고운 게 말이라고 했거늘, 항상 정답만 말하려고 하니 타인이 듣기엔 껄끄럽고 바른 말만 하는듯하여 못 마땅할지도 모른다.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 하는데 익숙하지 못하잖은가. 이런 성향을 잘 아는 지인, 친구는 누구보다 이런 필자의 허물에 대하여 관대하다. 오히려 표리부동하지 않아 인간적으로 더 친밀감이 든다는 말도 들려주곤 한다.


어찌 보면 너무 원칙만 고집하는 듯하여 이런 성격이 스스로 마음에 안 든다. 학창 시절 일만 해도 그렇다. 작문 반에서 학생들이 애써 쓴 글을 문집으로 발간 할 때다. 이웃에 위치한 남학교 작문 반 학생들에게 원고 청탁을 했다. 당시엔 컴퓨터도 없었기에 원고지에 글을 썼다. 어느 남학생이 원고지에 작품 제목을 비롯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안 썼다.


뿐만 아니라 학교명, 몇 학년 몇 반도 밝히지 않았다. 물론 겉봉엔 주소가 있었으나 소위 작문 반에서 글쓰기 공부를 한다는 학생이 기본적 작법인 원고지 정서법을 안 지킨 것이다. 또한 문집 담당자에게 인사말 한마디 없이 글만 우편으로 보내왔다.


이 때 문집 만드는 일을 총괄하던 나는 가차 없이 그 남학생 원고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훗날 학교 정문 앞에서 우연히 그 원고지의 주인공과 마주쳤다. 그 남학생은 나를 아는 듯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글을 왜? 문집에서 뺐느냐? 라며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말에 “원고지 정서법은 물론 기본 예의도 없는 학생의 글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우리 문집에 넣을 수 없었어”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자 자신의 그 무엇이 잘못됐느냐며 큰 소리로 항의를 해온다. 이 말에 더 솔직히 말했다.

“넌 기본적인 작법도 모르는 시건방진 태도로는 글 쓸 자격이 없어”라고 그만 쓴 소리를 하고야 만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순간 그 애의 적의에 가득 찼던 눈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애는 어이가 없다는 태도로 필자 말에 더 이상 대꾸도 못한 채 땅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당시 멀어지는 남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괜히 바른말 했다' 라는 후회마저 들었지만 한편 옳은 말을 했다는 생각에 왠지 속이 후련했다.


예의 없는 사람을 대하면 갑자기 비위가 상하는 성향을 갖춘 것은 어린 날 어머니의 밥상머리 교육에 의해서인 듯하다. “항상 어디서든 예의를 지켜라” 라는 타이름이 그것이다. 어머닌 집안에 손님이 오면 대문 밖까지 배웅을 했다.

이웃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를 꼭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길을 다니며 함부로 침을 뱉지 말라고 타일렀다. 타인이 믿고 해 준 말은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도 했다. 남이 베푼 친절, 배려, 은혜는 무엇으로든 마음을 다하여 갚으라고 하였다. 남이 안 봐도 항상 보는 것처럼 언행을 행하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비록 삶 속에서 당연히 행할 일들이지만 어머니 말씀은 삶의 유익한 지침서가 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도 남이 베푼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진정 감사해 하며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매사에 감사해 하는 마음 역시 예의와 연계 된다. 예의는 인간만이 지킬 줄 아는 절도 있는 언행 아닌가.


이런 연유로 예의범절이 반듯한 사람은 기품 있어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바쁜 삶 속에서 어찌 매사 예의를 차리느냐? 반문할지 모르나 예의는 불편한 게 아니다. 예의는 상대방을 향한 배려이자 사회 질서이다.


요즘 비록 컴퓨터 메일로 글을 보낼지라도 편지 형식처럼 받는 사람을 향한 인사말은 쓰는 게 원칙이자 예의다. 하지만 일부에선 이런 예의를 지키는 일에 소홀하다. 말 한 마디 없이 첨부 파일만 떡하니 보내기도 한다.


카톡 문자도 현대인의 소통 수단이다. 이 때 상대방에게 인사말도 없이 대뜸 결론만 써 보내거나 애써 써 보낸 문자를 외면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예의는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지닌 인품의 최대 잣대다. 이런 연유로 同姓인 여성도 매너가 좋으면 절로 호감이 가나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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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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