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자기 자신의 끊임없는 삶의 조수潮水, 그 물결로부터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숨결이 자유로워지고 마음이 넓어져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신과 우주를 찾아 날아오르는 것일까? 이즈막에 이르러 문득문득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에 적힌 이 문구에 의문점을 갖곤 한다.
필자를 어머니 못지않게 사랑했던 외할머니, 큰 이모, 그리고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 막내 남동생, 친정아버지도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내용처럼 신과 우주를 찾아 간 것일까? 그들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그 실체에 대하여 새삼 깊은 고뇌를 하게 된다.
죽음의 품엔 안긴 할머니, 이모, 남동생, 아버지, 이들은 생전 최선을 다하여 삶을 살았다. 한학자 집안의 따님이었던 외할머니는 경주 김 씨 대종손인 외할아버지한테 시집와 친정어머니를 비롯 5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큰 이모는 일제 강점기 때 정신대를 피해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슬하에 자식이 없자 남편한테 소박을 맞은 후 질곡의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생전 친정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여기며 사랑을 듬뿍 나눠준 분이다. 아버지는 함흥 청진에서 1, 4 후퇴 때 홀로 남하, 고학으로 최고학부를 마치고 젊은 나이에 경찰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천수를 다하였다.
남동생은 지방 대학을 나와 치열한 취업 경쟁률을 뚫고 대 기업에 입사해 장래를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그런 남동생을 시기라도 하듯 죽음의 그림자는 멀쩡한 동생을 갑작스레 덮쳤다. 십 수 년 전 초겨울 어느 날, 동생의 장례를 치르며 그 애의 시신 염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졸지에 당한 교통사고로 목숨 줄을 놓은 동생은 미동도 없이 깊은 잠 속으로 영원히 빠져들고 있었다.
막내 특유의 어리광이 남았던 선한 눈매, “누나”하며 다정하게 부르던 그 목소리도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던 두 손은 힘없이 손바닥을 펼친 채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던 두 다리도 그 동작을 멈추어 세상을 향하여 더 이상 힘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였다. 삶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가슴도 심장이 멎어서 세상과의 소통도 단절 됐다.
동생의 시신에 걸쳤던 옷을 장례사가 한 꺼풀 한 꺼풀 벗길 때 동생이 이젠 생전에 입었던 허욕의 옷을 훌훌 벗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그동안 철따라 거추장스런 생生의 입성을 갈아입느라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옷은 어쩌면 오욕칠정으로 한 땀 한 땀 지어진 바람의 옷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품에서 욕망의 옷을 벗어버린 동생은 천국을 향하여 날아갈 티끌처럼 가벼운 날개를 얻었지 싶다.
우리네 삶이 바람이 아니고 무엇이랴. 삶의 기쁨, 고통, 희열에 젖는 것도 실은 바람이려니, 인간사에 영원한 기쁨도 없으며 지속적인 고통 또한 없기에 생 자체가 바람이 아니던가. 온갖 욕망을 한 손에 움켜쥐려고 애쓴 것도 인간이 관 속에 들어갈 땐 부질없는 헛손질이 아니었던가. 인간이 죽음을 맞으면 이승에서의 부귀와 영화가 한낱 스치는 미풍이었음을 필자는 동생의 죽음을 통하여 비로소 깨달았다.
동생도 직장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 승진을 불과 한 달 여 앞두었으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그동안 애써 얻은 미래를 몽땅 잃었다. 동생의 피땀어린 노력도 죽음의 손길 앞엔 한낱 바람에 불과 했던 것이다.
동생의 시신에서 생전에 걸쳤던 낡은 바람의 옷이 드디어 벗겨지고 명주 수의가 입혀질 때 나는 동생 영혼이 한껏 자유롭기를 바람 했었다. 저 세상에 가서는 이승에서의 삶의 고통도 깨끗이 잊고 헛된 욕망에서 자유로운 망자가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인간은 바람의 옷을 탐하느라 머잖아 자신의 육신에 입혀질 수의를 짐작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일들 다수가 탐욕일진대 우린 그 옷을 걸친 줄도 모른 채 자신은 죽음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면 지나칠까? 하지만 조상님들은 만에 하나 자신의 심신에 입혀진 바람의 옷을 언젠가는 수의가 벗겨줄 것을 예상하며 늘 겸허한 자세로 삶을 살았다.
어디 그 뿐인가. 생을 마친 망자에 대한 예의도 매우 깍듯이 갖췄다. 시신일망정 그것을 허술히 다루지 않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 여겼다. 죽어서도 영생을 꿈꾼 나머지 그 시신을 감싸는 세제지구歲製之具를 매우 정중히 다뤘다. 수의는 주로 윤달에 마련하였다. 수의를 하루 만에 완성하도록 했다. 수의를 하루 만에 완성하도록 했다 하니 왜 그토록 서둘렀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완성된 수의는 좀이 쏠지 않게 담뱃잎이나 박하 잎을 옷 사이에 두어 보관했다가 칠월칠석에 거풍하였다.
그것의 재료로는 양반집에서는 비단으로 하였으나 일반인들은 삼베로 만들었다. 살아생전 인간의 심신을 감쌌던 온갖 욕망의 옷을 벗기는 수의, 필경 나도 내 몸에 친친 감았던 바람의 옷을 그것이 벗길 것이 아닌가. 그 생각에 이르자 요즈음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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