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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비밀 열쇠 -가마솥-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다. 그가 지녔던 어린 날 진짜 꿈은 요리사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식당인 가정에서 보낸 그는 지금도 음악 지휘자이면서도 일류 요리사 못지않은 훌륭한 요리 솜씨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음악 화음을 정확히 간파한 세계적인 음악 지휘자가 되기까진 아마도 갖은 양념을 섞어야 제대로 맛을 내는 요리의 오묘한 이치를 어려서부터 일찍 깨달아서인지도 모른다.


실은 필자도 어린 날 하루빨리 자라서 끼니때 맛있는 밥을 짓는 주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작문 시간에 ‘나의 꿈이란’ 글에 현모양처가 되어 아이들한테 도시락으로 구수한 누룽지와 흰 쌀밥을 싸주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랬다. 어린 날 꿈은 참으로 소박했다. 아니 간절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짝꿍처럼 하얀 쌀밥이 든 도시락과 간식으로 완두콩, 검은콩이 섞인 노릇노릇하게 눌은 누룽지를 맘껏 먹는 게 소원이기도 했었다. 어린 날 잠시 시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반에서 공부도 못하는 짝꿍은 항상 점심시간에 자신이 싸 온 흰쌀밥 누룽지로 아이들 기를 죽이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싸준 누룽지로 그 애의 충천하는 기를 꺾고 말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끼니때 보리밥도 제대로 연명 못하는 나로선 초등학교 시절 내내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애 집에 놀러 갔었다. 으리으리한 기와집 부엌 부뚜막에 크기 순서대로 가지런히 걸린 윤기 자르르 흐르는 가마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보자 그 애의 맛있는 간식인 누룽지의 근원지가 바로 가마솥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난 그것을 유심히 살펴봤다.

한편 그 솥마다 맛있는 음식을 요리한다는 그 애의 설명을 듣자 그런 집에서 자라는 그 애가 한없이 부러웠다. 또한 반 아이들 군침을 흘리게 하는 그 애 누룽지가 그 가마솥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그 집 가마솥이 무엇보다 탐이 났다. 어린 맘엔 우리 집에도 저런 가마솥 한 개 있다면 요술램프처럼 맛있는 쌀밥과 누룽지가 절로 생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서이다.

그날 그 애 어머니가 장작불을 지펴서 지어준, 콩이 드문드문 들어간 하얀 쌀밥의 기막힌 맛과 노릇노릇하게 눌은 구수한 누룽지를 긁던 달챙이 숟가락 소리가 마치 엊그제 일인 양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추억을 간간이 돌이킬 때마다 우리 민족이 은근과 끈기를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어쩜 가마솥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지나칠까? 요즘처럼 분초를 다투며 바삐 사는 현대인의 생활상에 맞게 개발된 가전제품에 비해 가마솥은 얼마나 많은 여유를 지녔는가, 가마솥은 우리에게 기다림을 안겨주는 조리 기구이기도 하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부르르’ 밥물이 넘치면 잉걸불을 조절하여 다소 약한 불기운으로 얼마간 뜸을 들인다. 가마솥의 고른 복사열로 충분히 뜸이 든 밥맛은 요즘 가전제품이나 조리 기구에 급히 지은 밥맛에 어찌 비하랴. 이젠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음식을 볶고, 삶고, 지지는 정경을 주위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연료의 발전에 의해 불을 땐 아궁이가 사라지자 덩달아 가마솥도 자췰 감추었잖은가.

그것이 우리 곁을 떠나서인지 아니면 어린날 추억이 서려서인지 이즈막에도 가마솥만 떠올리면 왠지 감회가 새롭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명줄인 밥맛을 드높인 가마솥 비밀은 무엇일까?’ 늘 궁금했다. 그것은 알고 보니 다름이 아닌 솥뚜껑이 무거워 온도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두꺼운 솥 바닥을 장시간 유지 시켜주는 온도가 그 열쇠인 듯하다. 외부로 덜 빠져 나간 수증기로 인한 솥 안 압력에 의해 밥이 찰지고 맛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오늘날 우리가 주방에서 쓰는 압력밥솥이 가마솥의 이런 원리를 적용한 듯해 새삼 조상님 슬기와 지혜에 머리가 숙여진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처질 때마다 가마솥에서 지어진 따끈한 밥 한 그릇에 김치를 척척 걸쳐 먹는다면 저절로 어깨가 활짝 펴질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야 할 것이다. 삶의 생동감이 있게 사는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닌 듯하다. 몸 건강하고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게 생기 있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이라도 당장 내 가슴에 묵직한 뚜껑과 두터운 솥 바닥을 지닌 가마솥 한 개를 들여놓아야겠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것에 따숩고 맛난 마음의 밥을 한껏 지어 정신적인 보양을 해야 할까 보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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