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인 위주 시상식' 92년 철옹성 깨고 변화 분수령 되다

기생충’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등 주요 부문상 4개 수상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10개월간 ‘기생충’이 해외 영화제와 영화 단체로부터 받은 상은 모두 1백51개에 달한다. 영화상 ‘싹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영어 영화가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은 셈이다.


■ 해외 기자들도 반한‘기생충’

지난 9일 오후 5시(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위치한 돌비극장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기생충’은 작품상.감독상.국제장편영화상.각본상.미술상.편집상 등 총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각본상 수상자로 ‘기생충’이 호명됐다. 각국 기자 2백여명이 모인 인터뷰실 출입구쪽 한국 등 아시아 기자들이 있던 곳에서 짧은 박수가 나왔다.


각본을 쓴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무대에 올랐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건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라며 “국가를 대표해서 쓴 건 아니지만, 이게 한국의 첫 오스카”라고 밝혔다. 한 작가는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듯 한국엔 충무로가 있다”며 “저의 심장인 충무로의 모든 영화인, 작가들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국제장편영화상에 ‘기생충’이 호명됐다. 각본상에 이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은 “부문의 이름이 바뀌고 처음 상을 받아 더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다”며 “오스카가 (이름 변경으로)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이사회는 지난해 4월 이 부문을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꿨다. ‘외국’이라는 표현이 구시대적이고 소외감을 줄 수 있으며 영화의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AMPAS 측은 설명했다.


국내외 영화계에서 약간의 수상 가능성이 제기된 감독상 발표 차례가 됐다. 마틴 스코세이지.쿠엔틴 타란티노 등 거장이 아닌 ‘봉준호’가 호명됐다.


봉 감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봉 감독은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고 오늘 할 일 다 끝났구나 생각하고 쉬고 있었다. 어릴 때 영화 공부할 때 책에서 보고 새긴 문구가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이다’. 그 말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가 학교에서 마티(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를 보면서 공부한 사람이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도 영광인데, 상을 받을지는 전혀 몰랐다”며 “제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모를 때 항상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에 뽑아준 타란티노 형님이 있는데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샘 다 존경하는 멋진 감독들이다. 오스카가 허락하면 텍사스전기톱으로 (이 트로피를) 5개로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내 작품상 수상작으로 ‘기생충’이 호명되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작품상 수상 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의 ‘숨은 공신’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무대에 올랐다.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참여한 이 부회장은 영어로 수상 소감을 밝히며 동생인 이재현 CJ 회장에게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기생충’의 성취 뒤엔 투자배급사 CJ그룹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 수상을 위한 사전작업인 ‘오스카 캠페인’도 사실상 CJ가 주도하며 1백억원가량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아카데미 변화의 시작”

‘기생충’은 90년 넘게 철옹성이던 아카데미 작품상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기생충’ 전까지 작품상을 받은 비영어 영화는 없었다.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등 영어 영화도 만들어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았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스페인어를 쓰는 멕시코 영화로 미장센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품임에도 외국어영화상(현 국제장편영화상)을 받는 데 그쳤다.


아카데미상은 AMPAS 회원들 투표로 결정된다. 지난해 6월12일 기준 투표권을 가진 AMPAS 회원은 8천4백69명이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미국 백인 남성으로, 아카데미는 최근 여러 비판을 받았다.


특히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미국.백인.남성 중심으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올해도 감독상 부문 후보 5명 모두 남성(봉준호 감독을 제외하면 백인)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비판을 의식한 아카데미 이사회는 다양한 국가.배경을 가진 이들을 회원으로 섭렵했다. 2015년부터 임권택.이창동.봉준호.박찬욱 감독과 이미경 부회장 등 한국 영화인 30여명이 회원으로 위촉됐다. 늙고 보수적인 아카데미 회원들 성향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 언론인 프란체스카 스콜쿠치는 “‘기생충’은 오리지널리티가 뛰어난 좋은 영화”라면서도 “외국어영화로 작품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스콜쿠치는 “미국 외 다른 국가 회원이 늘고 있고, 다양성과 마이너리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측면이 강해지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어영화 첫 작품상으로, 아카데미, 다양성 강화 노력


‘기생충’은 모두 57개 해외 영화제에 초청됐다. 황금종려상을 포함해 해외 영화제에서 받은 상만 19개에 달한다. 영화인 단체가 수여하는 영화상은 1백28개였다. 이날 아카데미상 4개를 추가해 1백33개가 됐다. 모두 합치면 1백51개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기생충’의 흥행 성적도 주목된다. 한국에선 지난해 5월 개봉했지만, 영국 등 해외에서는 최근에야 일반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11일 개봉해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현재도 상영하고 있다. 지난 7일 기준 북미에서 올린 매출은 3천5백47만달러, 전 세계에서는 1억6천5백36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위클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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