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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노래가 흐르는 낭만 항구


과거의 아픔을 보듬고 새로운 시간으로 나아가는 도시, 목포.

가난의 슬픔이 깃들었던 자리에 하나둘 예쁜 보금자리들이 들어서는 항구를 두고

‘목포의 눈물’ 대신 이젠 ‘목포의 낭만’을 떠올리게 된다.

먹구름을 이고 유달산(儒達山) 중턱의 유선각에 올라서자 그제야 목포가 항구 도시임이 실감 났다. 보슬비에 실려 풍겨오는 바다 내음과 다닥다닥 붙은 옛집들, 망망한 남해가 어우러져 어쩐지 처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무리 구석진 귀퉁이 가게라 해도 동양화나 붓글씨 한 점 걸리지 않은 곳이 없다는 예향의 도시지만, 예술의 향기보다 어쩐지 서글픈 감상이 먼저 차오르는 건 날씨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일등바위가 있는 유달산 정상까지 오르려 했으나 거센 바닷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려던 차였다. 어딘가에서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이 사망하고 4년 뒤 세워진 노래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일제 강점기에 ‘호남의 애국가’라 불리며 이곳 사람들의 고된 삶을 위로했던 노래 <목포의 눈물>이다. 조선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까지 울려 퍼지던 열아홉 소녀의 애절한 목소리가 바다 풍경의 잔잔한 배경음악이 되어주고 있었다.

설움과 한탄이 섞인 음색이 통한의 세월을 겪지 못한 여행객에겐 그저 윤슬처럼 반짝이는 소리로 들린다면 너무 섣부른 감상일까? 애잔한 가락을 타고 넘실거리는 파도에 중후한 멋이 깃들었다.

유달산을 여행의 들머리로 삼아 내디딘 걸음은 구도심의 목포 근대역사관을 지나 근대거리로 이어졌다. 아픈 역사의 흔적들은 이제 과거를 새롭게 비추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듯 호젓한 풍경에 발걸음이 느려진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양장점을 물려받아 시작한 퀼트 공방, 옛 일본식 외관을 그대로 보존한 선술집,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세탁소와 목욕탕 등 나지막한 건물들의 고요한 풍경을 보고 있으니 현재의 시간이 품은 과거의 상처에 마음이 쓰였다.


목포는 일자리를 찾아 바다 건너 떠나온 일본인 노동자와 조선인 노동자들을 가만히 끌어안아준 곳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물자와 사람이 끊임없이 들고나던 집산지로, 밤거리가 화려했던 곳이었지만 시대에 분노하면서도 순응했던 조선인의 억눌린 감정이 늘 배어있었다.

도시에는 아직도 옛 시대의 아픔이 바닷바람처럼 선선히 분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한마을떡집 주인 강정숙(89) 할머니의 사투리에서 해방 이후 물자 유통이 끊기면서 시작된 목포 사람들의 가난의 설움이 느껴졌다.

그 시절 이화여대 법학과에 합격할 만큼 우등생이었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서울 거기 올라갈 돈이 있간디? 다 올라가 불고 나만 남았지아.” 하지만 이내 “수파도 하고 떡도 치고 다방도 했는디, 온 동네 사람들이 내 야길 허벌나게 좋아해분 거 있제. 그 맛에 살제, 나도” 하며 웃는 모습에 회한은 옅어졌다.

할머니는 팥을 삶아 빙수를 만들고, 떡을 찌고 쌍화차를 내리며 밝은 모습으로 여행객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한탄을 가슴에 묻고 미소 짓는 할머니처럼 목포의 빛바랜 거리도 어느덧 평안의 길이 되었다.


흰색의 단아한 외관에 걸린 상호가 마치 홍콩의 옛 호텔을 연상시키는 숙소 ‘카세트 플레이어’는 40년 넘은 여관을 개조해 지난해 문을 열었다.

이곳의 청음실에는 카세트테이프와 플레이어가 진열되어있어 숙박객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중학교 때 마이마이로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음악을 듣던 게 제겐 가장 큰 낙이었어요. 그렇게 느긋하게 음악을 들었던 여유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숙소를 운영하는 김민지(33) 씨와 박명호(36) 씨 부부는 목포에 들어와 인생의 행로가 크게 달라졌다. 복잡한 도시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던 두 청년은 목포에 정박해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6년 전부터 목포에 들어와 마을 건립 사업을 기획하던 명호 씨는 2020년 가을, 밤낮없이 이어지는 직장생활을 잠시 멈추고 이곳으로 여행 온 민지 씨를 처음 만났다.

생각도, 감정도 통하는 부분이 많았던 둘은 연인으로 발전했고 지난해 민지 씨가 도시에서의 삶을 마저 정리하고 목포로 오면서 가정을 이루었다.

이젠 지난날의 자신들처럼 혼란스럽고 지친 도시 청년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며 둘의 소박한 삶을 단정하게 꾸려간다.

청음실에 진열된 테이프 하나를 골라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러 본다. 레코드 가게도, 길거리 음반 차트도, 테이프를 녹음해 선물하던 소소한 재미도 지금은 사라졌지만, 지난날을 풍미했던 유행가를 타고 옛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날의 추억은 또 어떤 모양으로 이 노래에 덧씌워질까. 낡고 쇠약했던 목포는 서로의 고단함을 보듬는 공간으로 거듭나 노랫가락에 서서히 녹아든다.

숱한 발길에 치인 가슴 아픈 세월은 정착하지 못한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선율을 만들어낸다.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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