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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조의 세상속으로] 생일 유감


어머님은 생일이 없었다. 언제 태어 나셨는지를 모를 리가 없었을 테지만 어머님이 당신의 생일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은 미역국이 올라왔을 때 그게 어머니 생일상인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어쨌든 가족들의 생일은 꼭 챙겨 주셨지마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당신은 당신의 생일을 챙기지 않으셨다. 결혼기념일도 챙기지 않으셨다. 16살에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다. 고된 시집살이가 있었던 시절이라 들었다.


탄신 100주년을 훌쩍 넘긴 어머님! 그래서 나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이런 것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자랐다. 내가 결혼하고 난 뒤에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해 아내로부터 정말 형편없는 남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생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나는 그런 걸 잘 몰랐고 또 직장 일에 얼마나 바빴던가?

가정보다 직장이 전부였던, 직장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몇 년을 섭섭하게 생각다가 포기를 했는지 잠잠해 지고도 한참을 더 지나서야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실 내 생일도 잘 몰랐다.

음력 생일날로 출생신고를 했는데 그게 양력처럼 쓰였으니 매년 음력으로 지내는 생일날을 찾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아내는 음력으로 할 때와 양력으로 할 때에 따라 나이가 한 살 달라진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한 해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나이가 몇 살인지로 헷갈렸고 띠가 달라지기도 했다. 약 한달 차이가 나는 양력과 음력이 연말, 연시에 걸칠 때 일어나는 문제다. 몇 년 전부터 음력 생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태어난 해의 양력날짜를 확인한 것이다.


그걸 가족들에게 공지했다. 매년 이 날로 하되, 주말이 아닐 경우 이 날과 가까운 주말로 보자고 선포한 것이다. 사실, 생일축하 한다고 파티를 해야 할까? 다 커서 출가한 자녀들에게 내 생일을 축하해 달라는 것은 이들에게 효와 예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시키는 것이다.

또 이를 구실로 만나보려는 뜻도 있다. 제 잘나서 저절로 크고, 밥 먹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겠지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파티를 열어주고 용돈이나 선물을 주면 넙죽 받고 있다. 도로 손주들에게 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일파티에서 촛불을 켜고는 그 초가 다 탈 때까지 서로 이야기를 한다. 가족들은 갑갑하다고 빨리 불을 켜자하지만 나는 촛불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촛불을 켰다가 금세 후욱 불어 끄고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생일 축가를 부르고 케익을 자르자 말자 한 조각 먹고 흩어지는 그런 생일파티는 안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양초 하나로 집중하는 시간에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태어날 때의 이야기에 태몽을 빼지 않고 들려준다. 큰 애는 작은 용으로 꿈에 만났다. 작은 애는 아주 큰 뱀으로 만났다.

소룡(小龍)과 대사(大蛇), 어느 것이 더 큰 인물을 암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주와 팔자도 좋다고 한다. 태몽과 사주, 팔자가 좋다해도 교육과 노력이 없으면 훌륭하게 되지 못할 것이라고 늘 했던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훌륭한 것일까? 나도 잘 모른다. 마치 내가 아직도 긍휼(矜恤)이라는 말을 잘 모르고 쓰는 것이나 비슷하다.

어린 자녀들의 생일 파티는 중요하다. 인정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친구들을 초대해야 하고 초대받아야 한다. 초대받지 못하면 섭섭할 것이니 가능하면 많이 초대하라고 했다. 받고 싶은 선물도 미리 파악해 두어야 한다.

선물로 격려하고 또 잘하면 큰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을 받아둘 수도 있다. 초대한 친구들에게도 섭섭하지 않게 해야 하니 엄마는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였다.

살다보니 흐뭇한 일도 있다. 지난 생일엔 뜻하지 않은 제자들이 찾아와 내 생일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양보다 질이라며 내가 간단히 음식을 준비하고 그들이 케익과 와인을 가져왔다. 더 큰 선물은 가져온 사랑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말이 아주 길었지만 경청해주었다. 그들도 가정이 있고 직장에 다 바쁘다. 그런데 미천한 선생을 챙기다니…. 내가 시 한 수를 읊었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松下問童子; 송하문동자) 선생님은 약초 캐러 떠났다 하네(言師采藥去; 언사채약거). 이 산 속에 계시지만(只在此山中; 지재차산중) 구름 깊어 계신 곳을 모른다 하네(雲深不知處; 운심부지처). 사실 나는 동자처럼 산문(山門)의 솔밭에 머물고 있다.

내가 캐는 약초는 그냥 쑥이며 고사리며 도라지 정도다. 가끔 문득 떠오르는 용어의 정의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본다. 늘 사용하면서도 잘 모르는 것들을 찾아서 알아본다.

시간이 나니 새롭게 공부하는 맛으로 산다. 사전을 찾는 것이 바로 채약(약초 캐기) 아니겠는가? 안개나 구름으로 덮인 심심산중이 아니고 근처의 도서관 정도이고 아니면 인터넷이나 사전으로도 충분한 약초 캐기다.

태어난 날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 죽으면 또 그만이지 않던가? 죽어서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려면 그만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5월에 드니 거북하고 민망한 날이 스승의 날이고 어버이 날이다.

스승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스승이 되지 못해서다. 챙길 어버이는 안 계시고 제대로 챙겨드리지도 못했는데 또 그저 그런 어버이가 되어 버렸으니 이 또한 어찌 민망하지 않겠는가?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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