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한을 헹구며... 빨래 터

최종 수정일: 2023년 3월 25일


현대 여인들은 참으로 삶이 편리하다. 밥은 전기밥솥이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 로봇 청소기까지 등장해 집안 구석구석을 티끌 한 점 없이 치워 주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손끝에 물 묻힐 필요도 없다. 설거지도 기계가 대신 해주는 세상이다. 아무리 게으른 여인이라고 할지라도 가전제품에 힘을 빌려 집안일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세상이다.

이렇듯 여인들의 가사 노동 해방은 여인들 몸매 가꾸기와 자아실현에 치중케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곳곳에 은연중 드리워진 성차별의 그늘은 여전히 걷힐 줄 모르는 게 현실이다. 여자가 똑똑하면 독하다고 하잖은가.


또한 피곤하다고도 험담을 한다. 옛날처럼 여인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미덕으로 요구하진 않지만 아직도 남성 우월주의가 사회곳곳에 음습하게 자리하고 있는 실정이라면 지나치려나.

이즈막 현실이 이러할진대 수십 여 년 전 삼종지도가 잔존하던 그 시절엔 어떠했으랴. 삼종지도는 여인의 미덕에 앞서 때론 일생의 올가미가 되다시피 했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어린 날 시골에서 생활 한 적 있다. 당시 경찰관인 아버지를 따라 잠시지만 어린 날을 보낸 곳은 초가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충청도 어느 한적한 산촌이었다.


마을 앞으로 큰 냇가가 휘돌아 흐르고 높고 험준한 산들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고즈넉한 산골 마을이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아이들과 고무줄놀이. 공기놀이도 시들해지면 마을 앞 냇가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겨울이면 얼음지치기도 하였다.

어느 여름 날 그날도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온몸이 땀으로 범벅돼 냇가에 가서 멱을 감고 있었다. 그 때 냇가 빨래터에서 순돌이 큰 엄마가 한 쪽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저만치 보였다. 동네 아이들은 순돌이 큰 엄마를 볼 때마다 ‘조막손’ 이라고 놀렸다. 나는 그러는 아이들이 어린 마음에도 왠지 야속했다. 오른쪽 손에 화상을 입어 오그라든 그녀가 필자 딴엔 한없이 불쌍했기 때문이다.

순돌이네는 마을 근동에선 내로라하는 부자였다. 그러나 순돌이 큰 엄마는 말이 큰 어머니지, 실은 그 집 식모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순돌이 아버지인 배 씨한테 시집와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러자 배 씨는 득달같이 당시 읍내의 티켓 다방 종업원을 첩으로 들였다. 그녀가 화상을 입기 1 년 여 전 일이다.

평소 짙은 화장에 하이힐을 신고 분홍색 원피스를 날아갈 듯이 차려입고 여름이면 양산을 받쳐 든 채 교만한 태도로 마을 사람들을 대하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마을에 오던 날 배 씨 네는 동네잔치를 크게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강지처인 순돌이 큰 엄마는 그날도 빨랫감을 한 보퉁이 머리에 이고 냇가로 향했었다.


평소 야멸차지 못하고 심성이 어진 그녀지만 적으나마 가슴에 질투를 품음직한 여인네가 분명하다. 아무리 그녀가 어수룩하거늘 자신의 남편 품에 딴 여인이 안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오죽하면 예로부터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하였을까. 그날 그녀는 빨래터에서 애꿎은 빨랫감만 방망이로 ‘펑 펑’내리치며 남편에 대한 원망, 시앗에 대한 시새움을 맘껏 풀어내는 듯하였다.

그리고 1 년 후, 배씨의 첩이 순돌이를 낳자 그녀는 아예 그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집안의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신세로 전락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씨는 첩의 간교한 베갯머리송사에 눈과 귀가 멀어서 사흘이 멀다않고 조강지처를 마른 북어 두들기듯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밤, 그녀가 기거하는 헛간 옆의 작은 방에 불이 붙었다. 미처 다 타지 않은 화롯불을 헛간에 버린 게 화근이었다.

이때 화마가 그녀 방을 덮쳤어도 어느 누구도 선뜻 불길 속에서 그녀를 구하려 들지 않았다. 보다 못해 동네 이장이 물 적신 담요를 뒤집어쓰고 가까스로 그녀를 구하였다. 그녀는 다행히 팔과 다리에만 화상을 입었다. 그래 조막손이 되었다.


그이후로 그녀 머리 위엔 늘 커다란 보퉁이가 이어진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순돌이 기저귀며 식솔들 옷가지였다. 그녀는 무거운 빨래 보퉁이를 이고 냇가라도 나올 양이면 전과 달리 갑자기 표정이 환했다. 삭풍이 살을 에는 혹한에 요즘처럼 흔한 고무장갑조차 구경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아닌가.

한쪽 손으로 간신히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하면서도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얼굴에 훈기가 감돌곤 했다. 여자로 태어나 자식을 출산 못하는 슬픔도 그러려니와 남편의 사랑마저 시앗한테 빼앗긴 그 한이 얼마나 깊었으랴.

더구나 남편의 모진 손찌검에 시달리는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성치 않은 몸으로 머리에 커다란 빨래 보퉁이를 이고 늘 비척이며 냇가로 향하던 그녀의 초췌한 모습이 엊그제 일인 양 눈앞에 선하다. 남의 일이고 어린 날의 기억이련만 마치 내 피붙이 일처럼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모습이 좀체 잊히지 않는다.

첩의 정에 흠뻑 빠진 남편의 박대를 어떻게 견뎠을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고 배 씨의 첩은 얼마나 그녀 앞에서 오만방자 했을까? 그녀가 겪었음직한 아픔을 헤아리니 더욱 그녀에게 연민의 정을 새삼 느낀다.

동네 여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주던 냇가 빨래터에나 나와야 비로소 조이던 숨통이 트이고 막혔던 가슴이 열렸을 참으로 가련한 여인…. 어머니 따라 냇가 빨래터엘 가면 그곳은 단순히 빨래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마을 돌아가는 이야기며 시어머니 험담, 남편 흉까지 들춰지고 농사 정보까지 교환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 갈 때마다 마을 여인들은 배 씨를 질타했다. 순돌이 큰 엄마의 딱한 처지를 동정한 나머지 심지어는 배 씨 집안에서 뼈 빠지게 일만 하지 말고 그 집을 박차고 나오라는 말로 그녀를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죽어도 배 씨 집안 귀신이 되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어린 나의 마음에도 그녀가 더는 갖은 고생 하지 말고 그 집을 뛰쳐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돌이켜보면 배 씨는 조강지처를 버린 거나 진배없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목숨처럼 지킨 순정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며칠 전 여름 휴가철을 맞아 어린 날의 추억을 더듬으려고 그 동네 냇가를 찾았다. 그곳의 빨래터는 어렴풋이 눈짐작으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련만 흐르는 냇물에 한없이 한을 헹구던 그녀의 모습은 간곳이 없다. 지난날 놓였던 너럭바위만 변함없이 푸른 이끼를 뒤집어 쓴 채 그녀의 환영幻影과 함께 필자를 반길 뿐이었다.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조회수 668회댓글 0개

Comments


Commenting has been turned off.
배너광고모집_490x106.jpg
jjdental 우측배너.jpg
세계한인언론인협회.jpg
위클리코리아_240705.gif
뉴스코리아-배너.jpg
거복식품-001.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