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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옹기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마디가 무척이나 굵어 보인다. 손을 얼마나 고생시켰으면 그러하랴 싶다. 할머니의 손에 콩나물 한 움큼이 쥐어져 있다. 할머니는 늘 덤을 듬뿍 준다. 내게 주는 것은 콩나물만이 아니다.


그 손 안에 후한 정까지 한아름 안겨 준다. 눈대중으로 팔면 얼마나 남을까 싶어 나는 별별 걱정을 다한다. 길거리에서 콩나물을 팔고 있는 인심 좋은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배불뚝이 쌀독을 불현듯 떠올리곤 한다.


항아리 모양새가 펑퍼짐하고 투박한 게 마치 후덕한 여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유년시절, 내 눈에는 그 불룩한 항아리 안에 무엇이든 담기만 하면 퍼내고 퍼내어도 줄지 않을 요술 항아리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 있던 배불뚝이는 쌀을 담아두던 쌀독이었다. 친정어머님이 아파트로 이사하여 버려질 처지에 놓인 것을 우리 집으로 옮겨 온 것이다. 아직도 나는 그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뼈저린 가난을 나와 함께 겪은 물건이어서 더욱 그러하리라. 그래서인지 나는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지난날 배고픔의 설움을 잊을 수 없다. 쌀 한 섬이 능히 들어갈 쌀독은 한때 우리 집 윗목에 신주처럼 모셔져 있었다.

 

가난한 살림이어서 항아리의 불룩한 뱃속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채운 적이 없었다. 아버지 부재는 언제나 삶의 피폐화 참담함만을 우리 가족에게 안겨주었다. 아홉 식구가 멀건 죽으로 연명하며 주린 배를 움켜쥘 때마다, 어머닌 애꿎은 쌀독만 수없이 들여다보며 한숨을 짓곤 하였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 속이 바다처럼 넓고 깊어 무한하게만 보였다. 그것을 우리 가족 생명줄인 쌀로 가득 채우는 게 어린 날 소원이기도 했었으니, 가난이 안겨줬던 서러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쌀독은 불룩한 배를 더욱 부풀리며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그 속에 부어진 쌀은 아무리 우리들이 퍼내어도 절대 줄어들지 않게 할 터이니 걱정 말라고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쌀독 안을 들여다봐도 밑바닥에 내려앉은 됫박 밑엔 한줌도 안 되는 낟알들만 깔려있는 게 고작이었다.

 

여인네의 통통한 엉덩이를 떠올리게 하는 항아리를 다시금 바라본다. 언제 봐도 그 모양새가 정겹기만 하다. 잿물 유약을 은은하게 칠한 황갈색 몸뚱이와 불룩한 뱃살을 쓰다듬어 본다. 비록 모양새는 투박해도 감촉만은 보드랍다. 불러진 뱃살에 옹기장이가 손으로 그려 넣은 대나무 잎사귀 문양이 눈길을 끈다. 그림은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았으나 ‘환치기’라고 하는 문양이 오늘따라 추사가 그린 난초보다 더 멋스러워 보임은 어인 일일까.

 

예로부터 쓰임새가 생활 용기어여서 인지 지방마다 옹기의 모양새가 다 특징이 있지 않았나 싶다. 불룩한 배가 마치 해산을 앞둔 임산부의 배처럼 탐스러워 전라도 옹기임에 틀림없다. 서울, 경기 지방의 독은 몸통이 홀쭉하고 쪽 빠지게 만들어 연꽃 봉오리 같은 꼭지를 단 뚜껑을 덮었다.


충청도의 항아리는 목이 높고 주둥이가 밖으로 약간 벌어져 나름대로 멋을 풍긴다. 경상도 독은 입부분이 좁고 어깨가 사선 모양으로 각이 진 것이 많다.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장아찌 등의 발효 식품들은 그 품안에 감춰 두었던 게 옹기가 아니던가. 고유 음식을 품에 안고 오랜 시간 참고 견뎌서 곰삭혀 주는 인내력은 조급증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함부로 다루면 깨지기 쉬운 것이 용기이기도 하다. 해서 우리 조상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조신한 몸동작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걷는 법부터 가르치지 아니했던가. 매사에 조심성 있고 절도 있는 삶을 깨우치기 위함이었으리라.

 

지금이야 함부로 던지고 어루만져도 깨질 염려 없는 매끈한 감촉의 플라스틱 그릇이 태반이다. 하나 그것은 간수하기 편리함은 있을지언정, 수십 년, 수백 년을 곁에 두고 정을 나누고 손때 묻히기엔 깊은 맛을 지닌 투박한 옹기를 따를 수 없다.

 

이즈막엔 삶에 떠밀려 사노라 가슴이 답답할 땐 마음을 청량케 하는 옹기의 소리마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자배기에 물을 퍼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고 그것을 두드리면 ‘통 토도 동, 통-’하며 맑은 소리를 낸다. 탁주를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자배기에 엎은 바가지를 두드리며 농사일의 고달픔을 달래던 순박한 농부의 모습을 농촌에서조차 좀체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어린 날의 인상 깊었던 그런 농부들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나도 손가락으로 항아리를 한번 튕겨본다. ‘통~’ 허공을 맴돌다 흩어지는 쇳소리가 겨울 하늘의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처럼 맑고 청아하다. 세상의 그 어느 악기가 이렇듯 아름다운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을까.


‘스타인웨이’의 피아노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이라도 아마 이만큼 좋은 소리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품 악기가 내는 음색보다 항아리가 피워내는 음색에 내가 반함은 된장, 고추장, 김치를 먹고 살아온 나의 토종 귀 탓이리라.

 

옹기로 내는 소리 중 가장 맑고 아름다운 소리는 소래기(큰 항아리 뚜껑)처럼 만든 부(缶)이다. 부는 대나무를 여러 개 조각내어 사장(四杖)으로 둥근 입을 치는 리듬 악기이다. 그 옛날 세종대왕님이 궁중에서 아악을 연주하게끔 이 악기를 만들었다 하니 옹기로선 이만하면 꽤나 출세한 셈이 된다.

 

요즘은 다루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옹기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유의 음식마저 그 맛을 잃게 됐다.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게 어디 옹기와 옛 입맛뿐이랴. 넉넉하고 너그럽던 우리네 심성도 어느덧 극단적인 이기심과 물신주의에 물들어 점차 잃어지고 있다.

 

이런 세태에 나라도 옹기처럼 오랜 세월 곁에 두고 볼수록 정감이 넘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항아리처럼 소박하고 넉넉한 정을 가슴에 품어 소탈한 인품을 지니면 그 향기가 가슴에 절로 일어 순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부(缶)처럼 투명하 목소리로 삶의 노래를 한껏 불렀으면 좋겠다.

 

옹기를 닮아 순수한 심성으로 세상살이를 하면 삶에 겨운 사람들의 시린 가슴도 따뜻하게 어루어 만져 줄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는가.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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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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