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열 목사 목회 칼럼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감정(Feeling)에 휘둘릴 것인가, 소명(Calling)을 따를 것인가?
- Weekly Korea EDIT
- 3월 1일
- 2분 분량

인류의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제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오곤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변덕스러운 감정(Feeling)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채 2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산다면,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과 충돌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게 될까요? 감정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은 참으로 쉽고 본능적입니다.
미우면 마음껏 미워하고, 누가 나를 치면 똑같이 맞대응하며, 무시당하면 저주를 퍼부어 속을 풀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본능의 파도를 타고 도달하게 되는 최종 목적지는 대개 철저히 고립된 섬이나 황량한 사막일 뿐입니다.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지옥 같은 비극 속에서도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을 발견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의 선택이 우리의 성장과 자유를 결정한다."
우리에게는 나를 공격하고 자극하는 힘든 상황이 닥칠 때, 본능적인 감정(Feeling)으로 즉각 반응할 것인지, 아니면 하늘의 부르심(Calling)으로 인격적인 반응을 할 것인지 선택할 위대한 자유가 있습니다.
소명으로 사는 삶은 내 기분이나 상황이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창조주가 나에게 요청하신 평화와 자비의 가치를 꿋꿋하게 이루어가는 삶입니다.
내 뺨을 치는 자에게 반대편 뺨을 돌려대고, 내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까지 내어주는 행위는 결코 나약하거나 어리석은 짓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의 거친 감정을 압도하는 강력한 소명의 결과이자 인생의 진정한 승리입니다.
누가복음 6장 36절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한 삶의 최종적인 마침표를 제시합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자비는 상대방이 자격이 있거나 예뻐서 베푸는 보상이 아닙니다. 내가 이미 하늘로부터 거저 받은, 측량할 수 없는 큰 자비가 있기에 그 사랑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 숭고한 소명의 삶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밭에 ‘네 마리 소’를 잘 키워야 합니다.
"내가 졌소! 당신이 옳소! 당신 뜻대로 하이소! 나를 용서하이소!"
이 겸손한 네 마리 소가 우리 가정을 거닐고 일터의 복도를 누빌 때, 날카롭던 갈등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것입니다.
[소명의 삶을 살기 위한 실천 사항]
첫째, 분노나 서운함이 솟구칠 때 잠시 숨을 깊게 고르며 "지금 내 Feeling이 이렇구나"라고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해 보십시오.
둘째, 그리고 곧바로 "그렇다면 지금 나의 Calling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셋째, 나를 모욕하거나 힘들게 했던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딱 1분간만 그를 위한 축복의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감정을 이기는 소명의 위대함이 당신의 인생 비행을 더욱 풍요롭고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박성열 목사 목회 칼럼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박성열 목사는 뉴질랜드 남십자성어린이예술단 음악감독으로 8년(1997-2004)간 봉사했으며, 뉴질랜드 시온합창단(성인혼성) 지휘자로 또 8년(2005-2012)간 봉사했다. 또 뉴질랜드 오페라단 단원으로 12년(2005-2016)간 활동했다.
현재는 오클랜드 장로합창단 지휘자로 12년(2014- 현재)째 봉사하고 있으며, 오클랜드 오라토리오코랄 운영위원장으로 11년(2015- 현재)째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뉴질랜드 예수찬양교회 시니어 목사로 19년(2007- 현재)째 사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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