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눈이 예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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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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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코로나 19가 창궐 했던 여름 어느 날 일이다. 여름 동안 폭염과 역병에 시달려서인가보다. 가족들이 도통 입맛이 없다고 하였다.
여름 내내 끼니마다 식탁 앞에서 가족들은 반찬 투정을 하곤 했다. 무더위 속 뜨거운 불 앞에서 애써 요리한 반찬이 식구들에게 외면 당할 땐 왠지 서운한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생각 끝에 가족의 잃은 입맛을 되찾아 주기로 했다.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인근에 위치한 시장을 찾았다. 어느 도시에선 재래시장 안 곳곳에 냉풍기를 설치한 곳도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그곳엔 장터를 찾는 고객들은 물론, 상인들도 냉풍기의 냉기로 인하여 쾌적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물건을 사고팔며 폭염을 이기고 있단다. 하지만 내가 찾은 곳은 여전히 용광로 속 같은 열기에 갇힌 채 많은 사람들이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하고 있었다.
시장만 찾으면 예상치 못했던 물품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충동구매를 하곤 한다. 이 탓에 유독 엥겔지수가 높아져서 이번엔 계획을 세우고 장을 보기로 했다.
애호박 몇 개, 당근 몇 개, 그리고 가지 몇 개 등등을 말이다. 장을 보기 위하여 시장 안을 우선 한 바퀴 돌면서 이곳저곳 가게 앞에 진열된 과일 및 야채 등의 가격을 물어보며 비교를 하던 중이었다.
이 때 시장 바닥에 주저앉아 깻잎, 상추, 오이 등을 펼쳐 놓고 파는 어느 노점상인 할머니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할머니는 이마에 연신 흐르는 땀을 쥘부채로 식히며 당신 물건을 사가라고 노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대하자 결혼 초 보아온 시어머니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어머닌 봄이면 뒷산에 올라 봄나물을 뜯고 여름이면 텃밭에서 들깨 이파리, 상추, 풋고추 등을 따서 머리에 이고 시댁 근처 장터로 향하곤 하였다.
자식들이 안쓰러워 말렸지만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방안 장판 밑에 숨겼다가 손자들이 오면 용돈 주는 재미로 어머닌 행상을 멈추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홀로돼 평생을 가난과 맞서며 4남매를 키우고 공부 시키느라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시어머니다. 이젠 고인이 된 시 어머님을 생각 하면 지난날 그분의 눈물겨운 헌신과 희생에 콧날이 시큰해 온다.
가끔 재래시장을 찾을 때마다 농산물을 팔고 있는 연세 지긋한 노점상 할머니를 뵈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종전에 걸음을 멈췄던 노점 앞에는 할머니가 농사지어 갖고 나왔다는 노각, 애호박, 풋고추, 고구마 줄기 단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구마 줄기는 흔히 별다르지 않게 여기지만 의외로 영양이 풍부하다고 한다. 이 말을 떠올리자 꽤 실한 고구마 줄기 한 단에 시선이 머물렀다. 자세히 보니 그 옆에 껍질을 벗긴 고구마 줄기도 작은 바구니에 놓여있다. 가격을 비교해 보니 껍질 벗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려 3천원이나 차이가 났고 양도 껍질 안 벗긴 게 훨씬 많았다.
양 많은 것을 한 단 집어 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느닷없이 고구마 줄기 단을 내 손에서 빼앗는 게 아닌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할머닌, " 새댁! 이 고구마 줄기는 웬만한 인내심 없인 껍질을 벗기기가 힘들다오. 내가 이것의 껍질을 까놓을 테니 장 볼 것 있음 더 보고 가는 길에 들려요" 라고 한다.
할머니 말씀에, " 할머니께서 껍질 벗기시는 일이 이 더위에 더 힘드시지요. 저야 텔레비전 보면서 하릴없이 까면 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마스크로 가린 내 얼굴을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 얼굴도 예쁘지만 말씨도 얌전하시네, 웬만한 여인들 같음 껍질 좀 벗겨달라고 부탁할 텐데… " 라는 칭찬의 말을 한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이 넘게 가렸는데 어찌 내 모습을 알아보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닌 눈을 보면 상대의 성정과 외모를 대강 짐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눈이 여자지만 안광眼光이 있고 눈빛이 맑다는 과찬까지 아끼지 않는다. 할머니 말씀을 듣자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 손이 절로 가슴에 얹어졌다.
이 나이 이르도록 살아오는 동안 세진世塵이 잔뜩 묻어 혼탁한 나의 눈 아닌가. 솔직히 명품을 보면 욕심을 냈었고, 이즈막엔 책 한권 사서 읽기보다 영화 관람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외모만 본 후 상대방을 내 맘처럼 신뢰하다가 낭패 보기 예사였잖은가.
또한 어떤 상황의 이면을 꿰뚫는 혜안을 미처 갖추지 못한 채 달콤한 말에 현혹당하곤 하였다. 어디 이뿐인가. 불의 앞에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정의로운 눈을 갖춘 적 있었는지 자신을 되돌아본다.
비록 여자라도 대의명분이 뚜렷한 실체를 바라볼 줄 알아야 했는데 눈앞의 현실만 자각하며 살아온 듯하다. 1852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펴낸 해리엇 비처 스토우 부인은 당시 정치와 사회적인 면을 반영하여 비참한 노예 생활을 고발한 소설을 집필 했잖은가.
타인의 고충도 헤아리는 웅숭깊은 눈을 지닌 해리엇 비처 스토우 부인이었다. 스토우 부인의 이타심에 젖은 시각으로 말미암아 미국 사회에 노예 문제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잖은가.
이제라도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오류를 지혜로운 눈으로 직시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그당시 새삼 해봤다. 이는 뜻밖의 장소에서 듣게 된 어느 할머니께서 건네 준 칭찬 한마디 덕분이 아니고 무엇이랴.
단연시 이런 성찰과 각오를 하며 너른 시장 안을 둘러본 후 다시 할머니의 노점상 앞에 이르렀다. 할머닌 얼마나 손이 재빠른지 어느 사이 그 많은 고구마 줄기 껍질을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 벗겨 놓았다. 그것을 내게 넘겨주는 할머니의 수고에 보답코자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드리자 한사코 뿌리친다.
그 모습에서 친할머니 같은 자애로운 눈빛을 발견했다. 아울러 할머니야말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눈을 지닌 분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여 그분의 언행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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