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당신의 모습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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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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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럽게 장대비가 쏟아진다. 미처 우산을 준비 못해 건물 처마 밑에 엉거주춤 서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여우비인 듯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금세 그쳤다. 날씨가 맑아지자 하늘빛이 매우 창백하다. 신호등 앞에 서서 잠시 희어 멀건한 하늘을 우러를 때다.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더니 식은땀이 등줄기에 흐른다. 급히 먹은 점심 식사 탓이런가. 쉴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이 순간 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여러분! 천국 갑시다. 삶은 찰나이고 영생의 길은 오로지 하느님만이 인도하실 것입니다.”라는 어느 여인의 종교 전도 내용이 귓전을 때렸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 어느 날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겪은 일이다.
이때 마이크를 통하여 들려오는 그녀의 둔탁한 목소리에 더욱 속이 메스꺼운 증세가 심화되는 듯 속이 울렁거린다. 금방이라도 토할 듯하였다. 소음으로 작용할 만큼 여인의 목소리는 도심지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역 앞을 오고 가는 수많은 행인들은 그 소리에 무관심한 듯 덤덤한 모습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필자만 유독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얼른 그 자릴 벗어나고 싶었다. 해서 두 손으로 애써 귀를 막은 채 근처 공원을 찾아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공원을 찾아 나선 발걸음이 마치 미로를 헤맨 듯 다시 제자리걸음이 되었다. 지난날과 달리 서울의 변화한 지리에 어둡다 보니 종전에 벗어났던 그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여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스토리로 입에 거품을 문 채 종교의 영험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녀 말 속엔 무신론자인 필자도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왠지 여인의 소 울음소리 같은 목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마이크를 통하니 그 목소린 흡사 동굴 속에서 듣는 것처럼 ‘웅웅’거리며 근방에 널리 울려 퍼졌다.
젊은 날 개인 비서로 근무할 시 수많은 이들에게 전화를 해야 했고 받기도 했다. 당시 이 업무 덕분인지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대략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졌다면 지나치려나. 전화 음성만 들어도 상대방의 체형 및 이목구비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또한 목소리만으로도 상대의 신분과 인격을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하곤 하였다.
목소리 속에는 그 사람의 얼이 실려 있다. 음성만 들어도 상대의 모습과 인격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 소위 우스갯소리로 돗자리라도 펼쳐야 할까 보다.
지난날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렇다. 볼멘 음성은 건강이 나빠지고 일도 제대로 안 풀린다.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면 삶 속에서 울 일만 연일 생긴다. 마음이 맑고 고귀하면 자연히 목소리도 고상하게 나온다.
빠른 음성으로 말하는 사람은 솔직하다. 반면 급한 성격 탓에 실수가 잦으므로 귀격貴格이라 말할 수 없을 듯하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목소리에 기운이 실린다. 이런 이는 듣기 좋은 목소리 톤으로 정확하게 말한다. 대화를 할 때 차분한 음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요모조모 정리하듯 말하는 사람은 성공 가도를 달리기도 한다.
목소리가 퉁명스럽거나 갈라지면 천박하여 좋은 운이 찾아왔다가도 달아난다고 인상 연구가 주선희 씨 말을 어디선가 읽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여성이 황소 울음소리를 내면 기가 드세어 풍파가 잦다고도 했다. 끈적끈적한 음성으로 말하는 이는 심중이 음흉하여 방심하면 뒤통수를 맞는다고도 했다.
명쾌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남성은 연애도 잘하고 매너도 좋으며 호탕하다고 하니 호감이 간다. 그러나 경계할 목소리도 있잖은가. 콧소리가 나는 목소리는 듣기엔 애교가 많은 듯하나 진정성이 없단다. 어금니를 깨무는 듯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은 일은 잘해도 모질고 독하다고 했다.
요즘 남녀 가릴 것 없이 성형이 일반화되었으나 목소리만큼은 진보된 의학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부모님이 물려준 대로 지녀야 한다. 그러나 타고난 목소리도 가다듬으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선 직장 상사가 전화 업무 담당자들에게 목소리도 성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해외토픽도 있었잖은가.
아름다운 목소리 역시 덕기德氣 있는 심성에서 비롯된다. 이로 보아 우리의 마음 자락은 참으로 신묘神妙하다. 하다못해 목소리조차도 복중腹中이 울림통이 되잖은가. 또한 운명도 이것이 쥐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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