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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에 둥둥, 안온한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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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매년 2만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대표 휴양지, 강원도 양양의 바다는 유난히 반짝인다. 물결이 바람에 부드럽게 너울대 햇살이 잘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 파도에 몸을 싣는 일은 일상이 평온히 흐르는 속도를 체감하는 최적의 방법이다.

“예전엔 매일 1시간 30분씩 수련했어요.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나태해진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쉽게 피로해지고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생기는 거예요. 그때 생각이 달라졌죠. 건강을 위한다는 핑계로 몸을 혹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3년째 요가 강사로 활동 중인 이수현 씨의 회고는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평일에는 헬스, 주말에는 등산과 달리기를 하는 요즘의 일상이 다소 버거워지던 참이었다. 무릎, 어깨, 발목에 뻐근함이 느껴져 몸을 쉬게 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매일 강도 높게 일하느라 고달팠던 육체는 요가 매트 위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 요가는 힘을 빼는 연습이었다.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고 몸 곳곳을 이완시킬수록 근육들은 단단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지금은 기분 좋을 만큼만 움직이고 운동하기 싫은 날엔 과감히 쉬어요. 그랬더니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어요”라는 수현 씨의 목소리가 눈앞에 넘실대는 파도처럼 가슴속으로 잔잔히 밀려들었다.

빌딩숲 사이에서 긴장해오던 몸이 휴식을 선물 받은 이곳은 강원도 양양의 중광정 해변.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다가 60년 만에 개방된 이력이 있는 바닷가로 요새는 ‘서피비치’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중광정 앞바다의 물결은 특별히 유연하다.


북동, 정동, 남동, 어디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대항하지 않는다. 풍향이 변덕스러우면 변덕스러운 대로, 풍력이 세면 센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흐름에 맞춰 출렁인다. 이런 너울을 연약하다고 흉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용적인 움직임 덕에 햇살이 다양한 각도로 부서져 중광정 앞 해수면은 유독 눈부시게 반짝인다.

현명하게 동요할 줄 아는 바다가 서퍼들에게만 매혹적일 리 없다. 파도의 우아한 몸놀림에 사로잡힌 해수욕객들은 마음을 조이던 무언가를 탁 풀어버리고 푸른빛을 따라 부유한다. 짭조름한 공기 속을 유영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서핑보드나 튜브에 올라타 물결과 함께 출렁이는가 하면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 피부가 까매지길 기다리기도 한다. 물놀이는 번거롭고, 가만히 있기엔 심심한 나 같은 사람들은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요가로 시간의 나사를 느슨하게 푼다.

호흡을 맘대로 다스리려 하지 않고 제 속도로 흐르도록 내버려두자 몸과 마음이 안온해졌다. 이 편안함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진 건 아침에 몸을 통솔하려 들다가 한차례 이상증세를 겪은 탓이었다. 러닝에 취미가 붙은 요즘, 바닷가를 배경으로 뛰는 낭만을 포기할 수 없어 새벽같이 일어나 낙산해변의 데크를 달렸다.


발놀림이 어느 때보다 가벼워 욕심을 냈다. 한 시간가량 러닝을 마치자마자 오봉산 중턱에 자리한 낙산사로 향했다. 가파른 언덕을 빠른 걸음으로 오를수록 숨은 가쁘고 땀은 흥건해졌다. 오히려 좋았다. 불필요한 체지방이 연소되고 그만큼 건강해지는 중이라는 쾌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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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에 도착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두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과하게 거칠어진 숨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발아래로 펼쳐진 동해의 절경에 집중하려 애썼다.

공복 상태로 두 시간 가까이 힘쓰던 몸이 백기를 든 건 다시 의상대로 돌아왔을 때였다. 선이 고운 소나무와 고풍스러운 정자, 깎아지른 해안 절벽이 어우러진 장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슴부터 시작된 통증이 식도를 지나 머릿속까지 퍼져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벤치에 앉고 말았다.


혈색 좋은 홍안으로 아늑아늑 춤추는 해당화를 부럽게 바라보며 이러다 호흡을 되찾지 못하는 건 아닐지 잠시 아찔해졌다. 그렇게 20분 정도 쉬고 나서야 서서히 아픔이 사라지고 숨이 일정하게 쉬어졌다.

생각해보면 몸이 원하는 속도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지내는 날이 많다. 기분 같아서는 활동량을 늘려도 좋을 것 같은데 체력이 받쳐주지 않고, 지친 마음이 몸을 움직였더니 도리어 생생해지기도 한다. 양양 바다는 자신에게 알맞는 속도를 찾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다의 리듬은 곧 생의 리듬인 걸까. 아기를 태운 요람처럼 흔들흔들 출렁이는 바다에 업혀 사람들은 물결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고 멈춘다. 바다와 사람이 하나 된 모습은 또 하나의 멋진 여름 풍경. 모래사장을 거닐다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리 잡고 앉아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여름날에 겨워 나른해진 몸짓들이 윤슬처럼 빛난다.

비구름이 서서히 걷히던 정오 무렵, 서핑 초심자들이 낙산 바닷가에서 한창 강습을 받는 중이었다. 물 위에 보드를 띄우고 엎드린 서퍼들은 중심 잡기가 어려운지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팔을 열심히 휘젓다가 파도가 오면 멈추고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 표정들이 하도 싱글벙글하기에 기분을 짐작해봤다. 아빠가 밀어주던 그네의 순한 진동, 엄마가 두 팔 벌리고 기다리는 미끄럼틀의 반드러움, 동네 얕은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던 짜릿함이 문득 떠올랐다.

위험하지 않다는 믿음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쾌감을 지금 저들은 만끽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보드 위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게 아니라 구태여 일어서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힘 주어 버티기보다 힘 빼어 흔들리기를 택한 사람들은 서퍼만이 아니었다. 하조대 전망대 아래 작은 만(灣)에는 스노클링을 즐기는 휴양객들이 많았다. 수면에 둥둥 떠서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뒷모습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톡톡 튀어오를 듯 가벼워 보였다.


파도를 끌어안고 바다의 템포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이들은 그렇게 내게 잔잔하게 움직이고, 생기있게 멈추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어디, 나도 한번 바다와 손을 맞잡아볼까.

다음 날 아침에 예정돼있던 ‘해파랑길 41코스 걷기 프로그램’이 한 시간을 앞두고 우천으로 인해 늦은 오후로 미뤄졌다. 인구해변을 맨발로 걷는 어싱(Earthing) 시간을 고대했던 터라 일정상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게 퍽 아쉬웠다.


약해진 빗줄기를 확인하고 혼자 해변으로 나갔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젖은 모래를 디뎠다. 천천히 움직이는 발등 위로 차가운 물살이 부딪혔다. 힘차게 올라왔다가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리듬이 반복됐다. 철썩철썩. 잘 기억해 두었다가 하루를 사는 속도가 너무 빨라질 때 메트로놈처럼 켜서 따르고 싶은 박자였다.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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