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열 목사 목회 칼럼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서 규정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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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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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가 60불 주고 플라스틱 탁자를 새로 샀습니다. 나무 탁자라고 착각하고 뜨거운 냄비를 올려 놓았다가 탁자가 눌어 버려 못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자가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생일 선물로 사드린 1,500불 상당의 ‘타블렛 pc’가 냄비받침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탁자를 잘 보존한 것이 자못 자랑스러운 듯 말씀합니다. ‘네가 준 그거, 참 좋더라.’
‘타블렛 pc’가 그 용도를 모르는 사람 앞에 놓이면 냄비받침일 뿐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뱅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 놀라운 통찰을 전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 자신을 아는 지식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우리를 만드신 거울, 즉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라는 이 정신은 방황하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잡아줄 가장 확실한 닻입니다.
시편 139편의 기자는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나이다.” 우리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어느 노련한 시계 장인이 아무도 보지 않는 시계 뒷면의 나사 하나까지 정교하게 닦고 조이는 것처럼, 창조주는 우리의 뼈 하나하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우리를 보고 계셨습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조립되는 부품처럼 우리는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심지어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설계자께서 이미 “너는 나의 걸작품(Masterpiece)”이라고 결론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존재감’과 ‘존재’를 혼동합니다. 존재감은 ‘좋아요’ 숫자처럼 남들에게 드러나는 수평적인 시선입니다. 하지만 존재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수직적인 시선입니다. 존재감은 무엇을 하는 사람(What)을 묻지만, 존재는 누구의 것(Who)인가를 묻습니다. 존재감에 목매는 사람은 언제든 소모되고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지만,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손을 얹어 주심을 믿기에 평안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깨달음이 너무 놀라워 감히 측량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 멀리서도 내 생각을 아시는 분, 혀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분. 그분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가짜로 포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이것이 코람데오의 정체성입니다.
진정한 나를 찾는 끝없는 질문은 결국 창조주를 만날 때 종결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얻은 존재감이나 스스로 세운 자존감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존재’는 영원합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의 시선 앞에서 살고 있습니까? 당신을 샅샅이 살펴 알고 계시는 그분의 따뜻한 시선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에 이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시편 139편 묵상하기: 매일 아침 시편 139편을 천천히 낭독하며 나의 존재가 얼마나 신묘막측하게 지어졌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침묵의 기도 시간 갖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5분간 하나님의 시선 아래 머물며, 그분이 나를 바라보시는 사랑의 눈길을 묵상해 보십시오.
‘존재’ 자체를 축복하기: 가족이나 지인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단지 내 곁에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보십시오.
다음 호에 계속

박성열 목사 목회 칼럼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박성열 목사는 뉴질랜드 남십자성어린이예술단 음악감독으로 8년(1997-2004)간 봉사했으며, 뉴질랜드 시온합창단(성인혼성) 지휘자로 또 8년(2005-2012)간 봉사했다. 또 뉴질랜드 오페라단 단원으로 12년(2005-2016)간 활동했다.
현재는 오클랜드 장로합창단 지휘자로 12년(2014-현재)째 봉사하고 있으며, 오클랜드 오라토리오코랄 운영위원장으로 11년(2015- 현재)째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뉴질랜드 예수찬양교회 시니어 목사로 19년(2007- 현재)째 사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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