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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 발행인 칼럼] 제2의 내란은 ‘기레기’로부터 시작되는가

“죄는 처벌받고 사회에 갚으면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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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지금 묘한 역설에 빠져 있다. 나라를 뒤흔드는 중대한 일에는 눈을 감으면서, 이미 수십 년 전 죗값을 다 치르고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에게는 돌을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정의’라는 이름의 내란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의 여론 풍경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공공의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오히려 뻔뻔하게 큰소리치며 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하고, 정작 그들에게 준엄하게 책임을 묻지는 못한다.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과거는 따로 있다. 그것은 공연한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라, 공권력이 행사된 자리에서 남겨진 기록들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1989년 ‘인노회 영장 발부 사건’이다.


당시 백영엽 판사가 “이적단체가 아닌 노동운동 단체”라며 기각했던 구속영장은, 다음 당직일에 다시 청구되었고 조희대 판사는 이를 즉각 발부했다.


그 결정으로 다섯 명의 노동운동가는 ‘빨갱이’ 낙인을 뒤집어쓴 채 구속됐고, 평범한 시민의 삶은 35년 가까이 뒤틀렸다. 그리고 2024년, 그들은 황혼에 접어든 나이에 이르러서야 재심을 통해 완전한 무죄를 인정받았다.


문제는 단순히 “옛날의 판단”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가 아니다. 한 판사의 서명 하나가 개인의 존엄과 삶의 궤적에 어떤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지, 그리고 그 결정이 당시 권력 구조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사법부의 책임이다.


반면, 이미 법적 처벌을 받고 사회적 재기를 위해 오랜 세월 성실히 살아온 이들에겐 끝없는 낙인이 찍힌다. 이는 정의가 아니다.


이것은 힘 있는 자의 과오엔 침묵하고, 힘 없는 자의 과거엔 채찍만 드는 비겁한 순응이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분명하다. 공적 책임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방패 삼아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고도 오히려 큰소리치는 현실,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과 일부 대중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돌을 던지고 있다. 이미 젊은 날의 잘못에 대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충분히 책임을 진 사람을 다시 끌어내 매장하는 데 열을 올린다.


30년 전 죗값을 치른 뒤 묵묵히 자신의 삶을 세워온 사람에게 다시금 짐을 지우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악취 나는 잔혹함이다.


기레기의 심판은 빠르고, 정의의 심판은 느리다

요즘의 미디어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정의감은 언제나 ‘안전한 곳’만을 향한다. 반격이 가능한 권력자에겐 침묵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대에게만 목소리를 높인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에 울려 퍼져야 할 경종이다. 죗값을 다한 사람은 다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인간의 갱생과 재기는 사회가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가치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를 무한정 소환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폭력을 생산하고 있다.


죄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말에 너무 쉽게 동의하고 있다.


정작 공동체에 현생의 해악을 끼치는 자들 앞에서는 침묵하면서, 이미 속죄를 마친 사람을 끝없이 끌어내리는 것은 정의의 탈을 쓴 내부 붕괴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의 돌팔매질은 결국 우리 모두를 향한 부메랑이 될 것이다.


사회는 징벌보다 회복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변할 수 있고, 사회는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문명이고, 그것이 국가다. 과거에 얽매여 누구든 영원히 ‘죄인’으로만 남아야 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미래를 포기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묻고 다시 선택해야 한다. 죄를 갚은 자에게 또 다른 형벌을 내리는 사회가 정의로운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은 결국 우리 모두를 겨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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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1일

발행인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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