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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낙타가 열었던 좁은 문

출세의 덕목으론 처세가 으뜸이다. 한 때 처세 방법 중 하나로 '와이료蛙餌料'를 꼽기도 했다. 이것을 써서 안 되는 일이 없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줄' 과 '빽' 에 와이료가 가미되면 바늘귀로도 낙타가 쉽사리 통과 한 적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국정 농단도 이런 연유로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일개 평범한 여인이 대통령과 연줄을 등에 업고 인人의 장막을 친 후 벌인 일들이 만천하에 드러났잖은가. 일명 '와이료' 및 '줄', '빽'이 세 가지가 세상 모든 좁은 문을 무사히 통하게 했다면 지나칠까.


언젠가 어느 재벌 2세의 팔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러자 그는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하긴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의 위력은 상당하다. 이 탓에 세상은 의義의 원리가 이득利得에 의하여 가려진 지 오래다. 경험에 의하면 처세를 잘 하는 사람은 성공도 매우 빠르다. 강자다 싶으면 무조건 그 앞에서 손 비비고, 무릎 꿇고 심지어는 충견 노릇도 마다않는다.

 

지금도 금력金力이 법치 위에 군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를 대하노라면 왠지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낀다. 그야말로 줄 없고 빽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심성이 정의로워도 제대로 빛을 못 보잖은가. 이런 일은 요즘도 도처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는 게 사회적 문제다.

 

며칠 전 동네 세탁소에서 겪은 일이다. 도수 높은 돋보기를 쓴 세탁소 아저씨가 재봉틀을 돌리며 나를 맞는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지 못하고 나보고 잠깐만 기다리란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세탁 비를 두 배나 받았으니 양심상 드라이크리닝 만 해 줄 수 없어 터진 솔기를 손봐주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셔유" 하면서 검정색 남성 바지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살핀다. 나는 세탁 비를 두 배나 받았다는 아저씨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 말에 세탁 비를 두 배나 받은 연유를 물어봤다. 그러자 세탁소 아저씨는 "이 바지를 맡긴 손님은 저희 세탁소에 옷을 맡길 때 제가 수고한다며 항상 세탁 비를 두 배나 주곤 한답니다. '와이료'를 받았으니 여느 손님보다 제가 신경을 더 많이 써야지유"라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세탁소 아저씨 입을 통해 '와이료'란 말을 듣는다. '와이료'라는 말을 듣노라니 꾀꼬리와 뜸부기 이야기가 생각난다. 꾀꼬리와 뜸부기가 서로 자기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다투다가 이웃에 사는 두루미에게 심판을 청했다.


판정은 삼 일 후에 하기로 했다. 뜸부기는 꾀꼬리에게 지기 싫어서 두루미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날마다 꾀꼬리 모르게 바쳤다. 결과는 뻔했다. 개구리를 뇌물로 바친 뜸부기가 꾀꼬리보다 목소리가 더 좋다는 판정을 받았다.

 

재미있는 우화다. 세탁소 주인이 말하는 '와이료'란 말은 이 우화와는 걸맞지 않다. 그의 순박한 인품으로 미뤄봐서 그렇다. 손님이 더 준 세탁 비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니기에 그에 준하는 배려를 손님에게 되돌려준다는 의미가 아닌가.

 

지난날 '와이료'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성행한 적이 있다. 사회의 혼탁과 부정을 부추기는 이 '와이료'는 그야말로 모든 문을 여는 만능열쇠로 작용했다. 어떤 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쉽사리 일이 해결이 안 될 때, 혹은 자신의 출세나 명예를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 쓰는 돈, 물질이 곧 '와이료'다.

 

이 와이료 탓에 정작 탁월한 역량을 지닌 사람이 불이익을 받았다. 또한 피땀 흘려 노력한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일은 부지기수였으니…. 지난 세월 세상의 탁류를 이룬 주류가 바로 이것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줄을 잘 서야 성공도 거머쥐었다. 든든한 빽으로 둔갑한 동아줄은 때론 생명줄이기도 했다.

 

'돈 때문에'라는 유행가가 이를 풍자하는 뜻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네 삶을 대변하는 노랫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돈 때문에 속상하고 돈 때문에 기분 좋고/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울리나/ 돈 때문에 출세하고 돈 때문에 고생하고/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유혹하나/ <후렴> 사랑도 의리도 돈에 얽매여< 중략>-'

 

하긴 사랑 앞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는 요즘 세태 아니던가. 성실히 땀 흘리고 받는 대가는 신성하다. 그러나 돈 때문에 인면수심이 되고, 돈 때문에 양심을 속이고, 돈의 힘으로 권력과 명예를 얻는다면 떳떳하지 못하다. 적어도 양식을 제대로 갖춘 자라면 물질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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