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돼지를 예찬하다

그 애는 항상 자신이 쓴 안경을 엄지손가락으로 올리곤 했다. 또한 손을 대면 금세라도 베일 듯 날선 줄을 세운 교복 바지를 단정히 입었다. 그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골목에서 자주 그 애랑 마주쳤다. 훤칠한 키, 옆모습이 흡사 명장의 조각처럼 정교한 이목구비를 갖춘 모습에 반해서다.
돌이켜보니 짝사랑이었다. 그 애만 보면 심장이 마구 뛰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그 아이 모습만 온통 눈앞에 아른거렸다. 심지어는 밤마다 꿈속에서 보일 정도였다. 여고 1학년 한창 순정적 사춘기 시기여서인가. 그야말로 앉으나 서나 그 애 생각뿐이었다.
재도 없이 타들어가는 초 토막처럼 그 남학생을 향한 짝사랑 때문에 가슴은 빠개지는 듯 뻐근하고 입맛조차 잃었다. 견디다 못해 친구에게 짝사랑 연심으로 심장이 터질 듯 아프다고 하소연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때 이런 감정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심장 자체가 일으키는 작용인지 못내 궁금했다.
평소 그 아이 모습이 먼발치서 보이기만 하면 심장부터 쿵쾅 거렸기 때문이다. 이 신체적 현상에서 애틋한 그리움, 사랑하는 감정의 발로야 말로 그 시원始原은 심장일 것이라고 미뤄 짐작까지 하였다. 이는 ‘배짱이 좋다.’, 혹은 ‘담이 크다.’ 및 ‘ 뱃속이 검다’느니 하는 낱말에서 인간이 지닌 심복설心腹說의 근원은 심장임을 엿볼 수 있어서였다.
이는 인간의 희로애락은 가슴에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주었다. 왜냐하면 슬픔에 직면하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라고 말해서다. 또 있다. 뻔뻔스럽고 몰염치한 사람을 일러 ‘심장에 털이 났다’라는 표현도 있잖은가.
우스개 소리로 ⸢흥부전⸥에 등장하는 놀부는 오장육부 외에 심술 한 부위가 더 얹혀 있다고 말한다. ‘오장칠부’를 지닌 인물로 평가하기도 하잖은가. 그 한 부위가 심장 밑에 달려있단다. 놀부의 심보를 살펴본다면 인간 마음의 진원지가 심장인 게 분명하다. 이게 아니어도 인간 생명을 지탱케 하는 매우 소중한 인체 부위 중 하나가 심장이다. 오죽하면 죽음을 맞으면 “심장이 멎었다”라고 말할까.
얼마 전 미국에서 심장병 환자인 50대 남성이 유전자 변형을 한 돼지로부터 적출한 심장 이식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함에 빠졌던 그는 돼지 심장 이식 후 정상을 되찾았던 당시엔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돼지 심장 이식 후 2개월 밖에 못 버티고 세상을 떠났다. 비록 두 달이긴 하지만 돼지 심장에 의하여 영위한 삶이였다.
그러고 보니 돼지라는 동물이 참으로 고맙다. 가축으로 태어나 한 생을 좁고 불결한 우리 속에 갇혀 지낸다. 그리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인간에게 헌신 해 온 돼지다. 흔히 외모가 불충분한 사람을 일러서, “돼지 같이 못생겼다”라고 비하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돼지처럼 타인을 위하여 기꺼이 온몸으로 희생과 헌신을 치룬 적 있던가.
이렇듯 고마운 돼지이련만 인간은 동물에게 잔인하게 학대 및 필요악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번 심장 이식에 희생한 돼지처럼 많은 동물들이 의료 실험용 실험대에 올랐다. 미 국방부의 경우 2008년도엔 실험용으로 총 8종의 동물들이 사용됐다. 그 수가 무려 7,500마리가 된다.
하다 못하여 살아 움직이는 벌레 한 마리에도 그것이 지닌 소중한 생명이 있다. 오죽하면 우리 조상들은 땅 위에 기어 다니는 벌레의 목숨도 존중, 밟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을까. 의료 실험용 동물들도 인간 삶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생명을 버린 것이다. 이게 아니어도 얼마 전 반려견이 실종된 노인을 구한 이야기는 우릴 감복하게 했다. 어찌 보면 개야말로 배은망덕한 인간보다 낫다.
눈앞의 사소한 이익 앞에 타인이 베푼 은혜 따윈 헌신짝처럼 저버리기 예사 아닌가. 이를 두고 “짐승만도 못하다”라고 말 할만하다.
한낱 미물의 동물이련만 살점과 뼈를 저며 우리에게 고스란히 바치다 못하여 이젠 실험동물로 둔갑한 돼지 아닌가. 끝내는 유전자 변형까지 감내해서 자신의 몸을 생체 실험용으로 내어주기도 했다. 그리곤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 시켰다. 이런 돼지의 값진 희생을 떠올리자 문득 만물의 영장이라는 나 자신을 다시금 깊이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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