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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춤바람이라도 맞고 싶다


음악이 흐르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춤은 그 시대의 삶을 말해줍니다. ⓒ OpenAI 생성 이미지
음악이 흐르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춤은 그 시대의 삶을 말해줍니다. ⓒ OpenAI 생성 이미지

어려서부터 유독 흥이 많았나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오는 음악을 한번만 들으면 그대로 따라 부르곤 했단다.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도 없던 그 시절,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춤까지 제법 잘 추었다고 한다.

 

대 여섯 살 때 일로 기억한다. 외가가 있는 시골 소읍에 음악 콩쿨대회가 열린 적 있다. 당시 가마솥, 쌀가마 등을 상품으로 내걸고 치러진 음악 콩쿨 대회였다. 당시 여중생이었던 막내 이모를 따라 이 대회를 구경하던 중, 갑자기 잡았던 이모 손을 뿌리치고 무대 위로 뛰어 오르더란다.

 

그 때 한창 유행하던 김용만의 노래 '정열의 차차차'를 참가자가 마이크를 잡고 부르자 그 옆에서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더란다. 무대 아래 사람들이 이 진풍경에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며 일제히 일어나 어르신들조차도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는 이모의 후일담이다.

 

그 이 후로 좁은 시골바닥에서 필자는 단연 춤의 신동으로 불리는 영예(?)마저 안았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글쟁이가 아닌 연예인에 도전했을 법한 재능이라고 이모는 가끔 어린 날 이야기를 들추곤 한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과 달리 그 당시 부모님을 비롯 주위 사람들은 아이답지 않은 능력(?)에 적잖이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나를 알려주면 적어도 몇 가지를 깨우치는, 아둔함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단다. 이를 본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조차 훗날 비록 여자애지만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될 거라는 기대아닌 기대를 했단다.

 

이런 터수라 더욱 이 걱정은 심화 되었다고 했다. 어머닌 요즘도 엊그제 일처럼 어린 시절 나를 향했던 기우를 입버릇처럼 말한다. 어린 싹에서부터 일찍 일명 '딴따라' 성향을 지닌 듯하여 연예인이 될까봐 큰 걱정을 했다는 게 그것이다.

 

이런 염려가 적중할 뻔 한 일도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시일이었다. 학창 시절 어머니 몰래 서울에 있는 모 배우 학원을 1년 동안 다닌 게 그것이다. 소위 얼굴이 카메라 발이 잘 받는다는 배우 학원장의 꼬드김과 모 여성 잡지사의 표지 모델 권유가 꿈을 부추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용케 안 어머니의 적극적인 만류로 그 꿈은 얼마안가 모래성이 되고 말았다.

 

요즘 트로트 가수로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장면을 대하곤 한다. 이를 볼 때마다 그 시절 일이 생각나서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초등학생들 꿈을 꼽으라고 하면 연예인이 제 1순위라고 하였잖은가. 이 꿈을 이루게 하려고 유년 시절부터 연기 학원을 보내는 부모도 적지 않다는 이야길 들은 적 있다.

 

한 때 나는 야구장에서 춤을 추는 치어 리더들을 부러워 한 적 있다. 비록 직업적으로 의식된 춤이지만 바라보는 관객들 눈을 호사시키는 힘을 지녔다. 얼마나 흥겨운 춤사위인가. 춤의 속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즐겁고 기쁠 때 절로 팔, 다리, 그리고 온몸이 움직인다. 즉 감정의 발로에 기인한 몸짓이잖은가.

 

특히 사교춤은 교감의 한 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로 손을 잡고 상대방과 음악의 선율에 따라 호흡 및 발을 맞추는 춤 아닌가. 이것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해방 전에는 블루스, 지르박, 탱고, 폭스 트롯, 왈츠 정도였다. 그러다가 6·25 이후 50년 대 중반에 이르러선 강렬한 라틴 계통인 새로운 리듬의 맘보가 유행 했다.

 

이 춤이 선풍을 일으키자 김정애 '닐니리 맘보'(1952년), 심연옥 '도라지 맘보'(1953년), 현인 '나포리 맘보'(1957년) 등의 가수들이 부르는 유행가가 이 덕으로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이 때 패션 및 헤어스타일의 대 유행에도 이 맘보춤이 일조를 했다. 맘보바지·맘보 머리가 그것이다. 당시 맘보 춤·맘보바지·맘보 머리까지 온 나라를 휩쓸었으니 그야말로 맘보의 시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시대상에 비추어본다면 6·25 전쟁 이후 허무주의에 편승한 서양 춤의 거센 바람이라 말 할 수 있다. 기름이 줄줄 흐르는 포마드를 잔뜩 발라 올백 및 리젠트 머리를 한 소위 여자를 울리는 제비족들도 있었다.

 

이들이 화려한 조명이 난무하는 카바레에서 직장 여성 및 유한마담들을 부둥켜안고 숨이 턱에 차도록 숨 가쁜 열기를 뿜어댔던 지난 50년 대였다. 춤바람의 광풍이 한바탕 한반도를 훑었던 것이다.


이 때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1955년 세칭 박인수 사건이 이를 방증하잖은가. 한국판 카사노바라 할 박인수였다. 70여 명의 양가집 규수나 유부녀들과 사통私通했다는 충격은 역시 춤바람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시대상을 비추는 거울격인 유행가 바람과 새로운 리듬의 춤바람은 이런 사회적 병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마치 봇물처럼 터져 6·25 전쟁 이후로 삭막하고 메마른 민초들 정서를 잠식하기에 바빴다.

 

그 후 50년 대 말 유행한 '차차차' 라는 춤은 1960년대 초반까지 유행 했다. 그 다음엔 '트위스트'가 한반도에 상륙하였다. 이는 60년 대 말까지 그 여세를 몰았으며 70년대엔 '고고'라는 춤과 사이키델릭 음악도 인기였다.

 

1990년대엔 마카레나, 2000년 초반엔 '꼭지 점 댄스' 2012년에 싸이가 '강남스타일' 노래를 부르며 춘 '말 춤' 등은 유행가와 맞물려 우리의 몸을 한껏 뒤흔들게 하였다.

 

요즘 세계적 불황과 미국 · 이란 등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인들은 전쟁의 공포와 이로 말미암아 야기된 경제난과 대적하느라 춤을 잊었다. 언제 지난날처럼 경쾌한 음악의 선율에 맞춰 온몸을 신나게 흔들며 춤을 출 수 있을까? 그 날이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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