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청춘의 샘

섹스 심벌의 상징이자 더하여 백치미(白痴美)까지 갖춘 마릴린 먼로다. 이런 그녀가 실은 엄청난 량의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생전 많은 량의 책을 읽은 증표는 그녀의 독서목록에 의해서다. 섹시한 자태로 만 각인되어 온 마릴린 먼로다. 하지만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에 또 다른 그녀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그녀가 미모 못지않게 지성도 깊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잖은가. 이게 아니어도 독서는 천만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야말로 마음의 양식을 쌓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언젠가 서울 어느 전철 안에서 일이다. 할머니 한분이 경로석에 앉아서 두툼한 소설집을 읽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독서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듯했다. 한 손에 펜을 들고 책의 밑줄까지 그어가며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이 무척 진지해 보이기까지 해서이다. 심지어 집중력이 얼마나 좋은지 독서삼매경에 흠뻑 빠져서 자신이 내릴 정거장도 깜빡 잊고 지나친듯했다. 이는 곁의 사람에게 자신이 내릴 정거장을 묻는데서 알아챌 수 있었다.
그 할머니를 보자 문득, '장곡망양(臧穀亡羊)' 즉 '장자(莊子) 제8장 변무(騈拇)'편에서 제목을 따온 일본 작가 쓰루가야 신이치의 '책을 읽고 양을 잃다'를 몇날 며칠 읽었던 지난날이 기억났다.
일본 및 동서양 독서광들의 책에 얽힌 사연을 다룬 에세이집이다. 이 때 책의 좀 벌레를 막기 위하여 은행잎을 책갈피에 묻어둔 내용에선 가을 향이 짙게 풍겨오는 듯하여 매우 향기로웠다. 이보다 더 매료 시키는 것은 책 내용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책 제목은 '장곡망양(臧穀亡羊)'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란다. 이 고사를 살펴보면 장(藏)과 곡(穀)이 들판에서 양을 치다가 둘 다 양을 잃었다. 경위를 따져 묻자 장은 "책에 빠져 있었습니다."라고 답했고 곡은 "놀이를 했어요." 라고 하였다. 이에 장자가 말하길, "일은 달라도 양을 잃은 것은 한가지다."라고 했다.
하인이 하는 일은 양치기인데 책을 읽고 놀이를 하다가 본분을 망각하고 양을 잃은 것이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의 고사도 있다. 기르던 양 한 마리가 없어지자 온 식구가 나서서 찾았으나 갈림길이 너무 많아 찾지 못했다는 의미 아닌가.
이렇듯 고사에 망양(亡羊)이 자주 등장 하는 것은 당시 양들이 우리의 소와 그 가치가 흡사해서 일 것이다. 생계의 든든한 자산이 아니었을까? 추론해 본다. 이로보아 때론 독서나 놀이는 한 집안의 재산인 양을 놓칠 만큼 이것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나 보다.
이때 장자는 딴 곳에 정신 팔린 종들을 나무라며 양을 잃은 결과에 대하여 같다고 말했으나 실은 독서와 놀이가 어찌 그 질료가 똑같을 수 있으랴. 책을 읽으면 지식, 지혜, 상식, 정보 등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놀이는 순간만 즐거울 뿐 이다.
가끔 책을 읽다가 지루하거나 눈꺼풀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질 때다마 전철에서 목격한 어느 할머니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그 할머니의 모습에서 고사 '표맥(漂麥)'이 떠올라서다.
아내가 외출을 하며 독서삼매경에 든 남편에게, "날이 곧 비가 올 듯하니 비가 내리면 마당가에 널어둔 겉보리 좀 갈무리해줘요" 라고 당부 했다. 하지만 남편은 학문에 전념 하느라 밖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도 의식 못했다. 밖에서 아내가 돌아왔을 땐 쏟아진 소나기에 보리가 다 떠내려간 후였다. 중국 후한 때 고봉(高鳳)의 이야기다.
독서를 논하려니 생뚱맞게 '청춘의 샘'이라는 낱말이 뇌리를 스친다. 언젠가 들려온 미국 의학자들이 인간의 잃어진 '청춘의 샘'을 되찾을 수 있는 기술을 유전자 조작으로 개발했다는 희소식이 그것이다. 동물 성장에 관련된 유전자 'Lin28a'이다.
이를 활성화 하는 실험을 쥐에 적용 한 결과 'Lin28a'가 활발해진 쥐는 보통 쥐보다 털이 신속히 자랐다. 또한 상처도 금세 아물었다. 이에 연구진은 "'Lin28a'가 인간에게도 재생 능력을 되돌려주는 복합 회복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춘의 샘' 유전자 조작으로 이제 누구나 젊음을 유지하면 성숙한 내면을 갖춘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이 들어 젊음에 반하는 샤프한 정신력이야말로 젊음의 비결이 아니던가. 뇌가 젊으면 몸도 젊어진다는 학계의 보고도 있잖은가.
정신이 닳아 너덜너덜 낡아지지 않으려면 회춘을 고대하기보다 뇌를 자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독서를 생활화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책 속의 내용으로 뇌를 한껏 적시우면 암보다 두려운 치매도 예방할 수 있다.
이로보아 독서야말로 세 끼 밥과 같은 심신의 양식이자 청춘의 묘약이나 다름없다. 깊어가는 가을이 아니어도 평소 독서를 습관화한다면 청춘의 샘물이 온 몸에 전이(轉移) 되어 혹시 처녀, 총각으로 변신할지 모르잖은가.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jpg)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나를 사로잡은 남자](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f56cc61e17224904b7ce131daed459f7~mv2.jpg/v1/fill/w_980,h_653,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dbf97_f56cc61e17224904b7ce131daed459f7~mv2.jpg)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날개의 추락](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1bbc7886dfd845c8826ee3e01c2b9a89~mv2.png/v1/fill/w_980,h_980,al_c,q_90,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dbf97_1bbc7886dfd845c8826ee3e01c2b9a89~mv2.png)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고칠 것 없는 일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e5056e0693d843318cd65240571ce0c6~mv2.jpg/v1/fill/w_980,h_980,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dbf97_e5056e0693d843318cd65240571ce0c6~mv2.jpg)











.jp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