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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열 목사 목회 칼럼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열자 우대의 공평, 내 속을 뒤집는 은혜

8월 12일
2분 분량

우리가 생각하는 ‘공평’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이 말하듯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르고 바른 것, 곧 “내가 노력하고 일한 만큼 정확히 보상받는 것”을 우리는 공정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0장 1-16절의 포도원 비유는 이러한 세상의 상식을 완전히 흔들어 놓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평은 성과나 수고의 양에 비례하는 보상이 아니라, 각 사람의 형편을 살피어 “필요한 만큼” 값없이 채워 주시는 파격적인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은혜가 우리의 공정 감각을 건드리며 참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비유 속 포도원 주인은 낮 12시, 오후 3시, 심지어 해가 지기 직전인 오후 5시에도 장터로 나갑니다. 효율성을 따지는 일반적인 고용주라면 아침 일찍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고 끝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계속해서 장터를 찾으며, “아무도 써주지 않아 종일 불안하게 서 있던 사람들”을 불러옵니다.


주인은 생산성을 극대화할 일꾼을 찾는 경영자가 아니라, 하루 한 끼가 아쉬운 가장들의 생존과 존엄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어버이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품삯을 ‘일한 시간’에 연동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새벽부터 와서 뙤약볕을 견딘 사람이나, 단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이는 단순히 “약속한 액수를 주었다”는 법적 이행을 넘어, “모든 가정의 오늘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를 동등하게 배려한 사랑의 결정이었습니다.


나아가 주인은 나중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어 일찍 온 이들의 마음을 시험하듯 갈등을 드러냅니다. 종일 땀 흘린 이들은 “어떻게 한 시간 일한 자와 우리를 같게 다루느냐”며 억울해합니다. 내 노력이 타인의 은혜 때문에 희석된다고 느낄 때 솟구치는 이 불편함은, 사실 은혜의 영역에서도 세상의 계산법을 고집하는 우리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이에 대한 주인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의 공평은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 자본과 공로의 논리가 아닌, 당신의 무한한 선하심으로 우리의 결핍을 채우시는 은혜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단순한 노동 보상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이 받은 은혜를 보며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를 묻는 심오한 질문입니다.


내 안에서 비교와 불평의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자책으로만 덮지 말고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비교의 잣대로 타인과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낼 때, 천국의 시선이 비로소 우리 삶의 언어가 될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박성열 목사 목회 칼럼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박성열 목사는 뉴질랜드 남십자성어린이예술단 음악감독으로 8년(1997-2004)간 봉사했으며, 뉴질랜드 시온합창단(성인혼성) 지휘자로 또 8년(2005-2012)간 봉사했다. 또 뉴질랜드 오페라단 단원으로 12년(2005-2016)간 활동했다.  


현재는 오클랜드 장로합창단 지휘자로 12년(2014-현재)째 봉사하고 있으며, 오클랜드 오라토리오코랄 운영위원장으로 11년(2015- 현재)째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뉴질랜드 예수찬양교회 시니어 목사로 19년(2007- 현재)째 사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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