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압화

희망의 꽃 한 송이쯤 가슴에 가꾸고 싶다. 희망은 삶의 고달픔을 잊게 하는 유일한 묘약 이어서이다. 나이 들어서 가장 큰 희망은 건강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가슴의 꽃' 운운하노라니 몇 해 전 일이 문득 떠오른다. 4년 전 초 봄 어느 날 딸들과 함께 강원도에 위치한 동굴을 찾았다. 입구서부터 짙은 운무로 보행마저 위태로웠다. '지하 계곡'이란 말이 어울릴 법하게 동굴 속엔 용암이 만든 석주와 석순이 기기묘묘한 형상을 갖춘 채 동굴 속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동굴 안이 매우 협소하여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뎌 가까스로 마지막 지점엘 도달했다. 별반 찾는 이도 없는 동굴 안은 한적했다. 이 때 저만치 희미한 물체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추레한 행색의 중년 남성이 돌 위에 주저앉아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 앞엔 역시 꾀죄죄한 외양의 또 다른 남성이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면서 그 남자를 달래는 듯 해 보였다.
길 안내를 위해 밝힌 조명이 안개로 흐릿하게 번져서 왠지 모를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동굴 분위기였다. 눅눅하고 음산해야 할 지하 동굴이련만, 안개 탓이런가. 흡사 꿈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것은 어인일까. 그러나 이런 기분도 잠시, 남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두 주먹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는 남성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심란했다.
눈물만 대하면 가슴이 뻐근하다. 이는 평소 지난날 이젠 고인인 친정 노모의 눈물에 애간장이 다 녹아서 이다. 지난날 무엇보다 눈물범벅인 어머니를 뵐 때마다 그 애처로움이 뼛속 깊이 파고들어서인가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간이 날 때마다 안부 전화를 드리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닌 십 수 년 전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막내 남동생 이야길 하며 울음보를 터뜨리곤 했다.
어디 이뿐이랴. 필자만 보면 어머닌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또다시 동생 이야기로 눈물부터 쏟는다. 그런 어머니를 뵙고 돌아온 날은 영락없이 밤잠을 못 이루며 뒤척이기 예사이다.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막내 남동생은 생전, 어머니 가슴 갈피마다 한 송이 꽃으로 존재 했었다.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 기억엔 남동생은 금세라도 생전 모습인 환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들어올 것 만 같은 자식이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절절한 슬픔이 나에게도 전이돼서인가. 어머니의 눈물은 몇 날 며칠을 나로 하여금 우울감에 함몰시키기 충분했다.
생전에 어머닌 필자 만 보면, "너희들은 나에게 항상 꽃이었다" 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하곤 했다. 하긴 인생 최고의 꽃은 결국 자식이 아니던가. 당시 어머니 눈물에 대하여 생각에 잠길 즈음, 곁의 두 남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 하게 됐다.
울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카지노에서 아파트 3 채를 몽땅 슬롯머신에 탕진 했단다. 죽고 싶어도 수중에 단 돈 몇 천 원 뿐이라 독약을 못 사 자살도 못한다고 울먹인다. 그럼에도 끼니 이을 돈조차 수중에 없어도 카지노 곁을 좀체 못 떠나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 남자를 달래던 남자는 한 술 더 뜬다. 자신은 벌써 8년 째 카지노가 있는 동네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카지노에서 몽땅 날린 것도 모자라서 가정 파탄까지 났다고 한다. 아직도 카지노 주변을 배회하며 다시금 잭팟 터질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불과 20분 만 재수 좋음 많은 돈 버는 것은 일도 아닌데…" 라는 말을 지껄였다. 그 말에 필자 가슴 속 꽃마저 순간 제 빛이 퇴색되는 느낌이었다. 도박장에서 대박 터질 날만 바람 하는 그들이다. 흡사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길 바라는 요행 심리나 다름없잖은가. 그들은 자신이 불행의 수렁에 빠졌다는 현실조차 의식 못하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 두 남자는 오로지 한탕주의만이 인생 전부의 꽃인 듯하다. 이는 마치 향기도 아름다움도 바짝 메마른 압화壓花와 같다고나 할까. 도박 중독이 이들 가슴 속에서 희망의 꽃을 스러지게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잖은가. 도박 중독이야 말로 알콜 중독, 마약 중독 못지않게 인간을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가는 최악 중독이다.
하루빨리 이 두 남자가 도박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서 새 삶의 꽃을 활짝 피웠으면 좋겠다. 이들에게 불행을 안겨준 이곳이 더 이상 사행심에 의한 인생 파국의 관문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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