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추미(醜美)
- Weekly Korea EDIT
- 2일 전
- 3분 분량

여섯 살쯤 일이다. 세월이 흘렀으나 지금도 이명耳鳴처럼 울려오는 말이 있다. 폭염이 심하던 여름 어느 날 저녁 무렵으로 기억한다. 백옥처럼 흰 이불 호청을 빨랫줄에서 걷다말고 어머닌 넋 나간 듯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행동에 의문이 일어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어머니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어머닌 필자 손을 급히 이끌었다. 그리곤 마당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서쪽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뜬금없는 어머니 행동에 의아해 하자, “하늘빛이 참으로 곱지 않느냐?” 라며 어머닌 혼잣말처럼 말한다. 그 말에 자세히 보니 어린 눈에도 하늘 한 귀퉁이를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노을빛이 무척 고왔다.
그래, “어머니! 하늘 색깔이 참으로 예뻐요” 라고 말하자,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저 노을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 딸 마음이 참으로 어여쁘구나. 너도 훗날 자라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이 되렴” 라고 뜻 모를 말을 하였다.
당시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돌이켜보니 지난날 어머니께서 그토록 우리들에게 동화책을 많이 사준 것도 독서를 통하여 내면에 진선미를 갖추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여름날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후면 앞산 산봉우리에 무지개만 걸쳐지는 게 아니었다. 마치 갈증이라도 해갈한 듯 잡초와 함께 마당가엔 무지개 빛깔 못지않은 예쁜 들꽃들이 앞 다퉈 피어나곤 했다.
그것을 꺾거나 뽑기라도 할양이면 어머닌 한사코 말리곤 했다. 풀은 뽑아도 꽃은 없애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였다. 어디 이뿐이랴. 남다른 미감美感을 지닌 어머닌, 무명천에 쪽빛 물을 들여 원피스며 웃옷 등을 직접 재봉 일을 하여 우리들에게 입혔다.
평소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도 고운 말을 쓰라고 했다. 상대방이 들을 때 기분이 불쾌하거나 비수로 꽂히는 말은 삼가 하라고 누누이 타일렀다.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던 내게 어머닌, 손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주며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색을 칠하되, 어둡고 칙칙한 색은 피하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아마 나의 장점 중 하나인 담아한淡雅한 성품이 어머니의 가정교육에 의해 형성된 후천적 성향일 듯하다. 또 있다. 감성지수가 유난히 높아 타인의 고통을 마치 내일처럼 공감하잖은가. 이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나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 역시 어머니 못지않은 미감 예찬론자다. 무엇이든 정갈하고 멋을 지닌 게 좋다.
하다못해 화장품도 질보다 케이스가 앙증맞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좋다. 사람도 겪으면 겪을수록 매력과 남다른 인품이 돋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모난 성격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왠지 부담스럽다. 옷도 아름다운 색상과 독특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이런 연유로 젊은 날엔 하이힐을 고를 때도 발 편한 구두보다는 모양이 별다르고 개성 있는 제품을 구입하곤 했다.
이런 성향에 힘입어 예술의 미학美學에 수 십 년 매료 되었나보다. 문학에 심취한 게 그것이다. 특히 수필 문학을 창작하며 인간은 단 하루도 아름다움과 대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무엇보다 수필 창작은 인간학人間學으로서 세상과 사물을 따뜻하고 남다른 미적 관점으로 바라봐야만 좋은 글을 꾸릴 수 있잖은가. 이게 아니어도 삶 속에서 절대미에 대한 추구는 누구나 행하는 일이다. 이는 추미醜美를 판가름 할 수 있는 인간만이 지닌 능력에 의해서다.
동물은 이런 미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없잖은가. 감미로운 선율의 음악, 새들의 청아한 우짖음 소리,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에 도취할 수 있는 것도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의지에서라면 지나칠까. 꽃을 보고 외면할 사람은 아무도 없잖은가. 동성이라도 미인을 보면 기분 좋잖은가. 그림도 명화를 보면 감동이 일잖은가. 하다못해 가전제품들도 성능보다 우선적으로 심플한 디자인에 눈길이 머무는 게 사실이다.
이로보아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은 인간 본연의 욕구다. 누군가와의 대화도 희망적이면 절로 힘이 솟는다. 가장 아름다운 대화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달콤한 밀어蜜語다. 그러므로 평소 말 한마디도 연인의 정담情談처럼 나눈다면 얼마나 좋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질까.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 들려준 말씀을 이해할 듯하다. 실은 우린 생의 목적이 다름 아닌 영원한 구미求美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미의 존재 극치는 딴 데 있지 않고 우리네 일상에 스며 있어서 그것을 호흡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jpg)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꽃잎의 달콤함과 위대함](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3fdc4b4a4f86445cae255c0079cb8fff~mv2.png/v1/fill/w_980,h_980,al_c,q_90,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dbf97_3fdc4b4a4f86445cae255c0079cb8fff~mv2.png)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들꽃 닮은 여인](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9d7b112b46a04d36afdbe9792c5c41a6~mv2.jpg/v1/fill/w_980,h_668,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dbf97_9d7b112b46a04d36afdbe9792c5c41a6~mv2.jpg)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오지랖을 넓히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c8bf9595f892465bb4c372853618f5a2~mv2.png/v1/fill/w_980,h_653,al_c,q_90,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dbf97_c8bf9595f892465bb4c372853618f5a2~mv2.png)






![[안기종 발행인 칼럼] 제2의 내란은 ‘기레기’로부터 시작되는가](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7bc89009368e49fbbbb4c8605506d668~mv2.jpg/v1/fill/w_44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dbf97_7bc89009368e49fbbbb4c8605506d668~mv2.webp)
![[안기종 발행인 칼럼] 제2의 내란은 ‘기레기’로부터 시작되는가](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7bc89009368e49fbbbb4c8605506d668~mv2.jpg/v1/fill/w_149,h_84,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dbf97_7bc89009368e49fbbbb4c8605506d668~mv2.webp)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