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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목숨보다 더 귀한 -반닫이-


평소 유행가 중 ‘님’이라는 노래를 애창한다. 과연 ‘님’은 노래 가사 대로 목숨보다 더 귀하단 말인가.


아무리 사랑이 지고한들 한 여인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랴. 신곡들이 허다한데 굳이 흘러간 옛 노래인 ‘님’이 필자 애창곡이 된 연유는 그 곡에 얽힌 애틋한 추억 때문이다.

한 때 어린 날을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우리 반에 수족을 제대로 못쓰는 영철이라는 남자 아이가 전학을 왔다.


지금이야 장애인 시설이 갖춰져 장애우도 마음 놓고 공부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당시엔 이들이 누리는 혜택은 꿈조차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정상인 우리들과 함께 공부를 해야 했다.


그 아이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애 누나라고 불러도 될 만큼 앳된 여인이 영철이 엄마였다. 마을 초입에 살고 있어서 학교가 파하면 영철이네 집을 거쳐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은 소나기가 퍼붓던 여름날이었다. 배가 아프다고 일찍 조퇴한 그 아이 집 처마 밑에서 우리들은 때마침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할 때였다. 방안에서 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호기심에 방안을 들여다보니 그 애가 배를 움켜쥐고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집 안을 둘러봤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영철이 엄마가 일하는 장소를 알아내어 1키로 남짓한 읍내를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느 허름한 술집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장소라 선뜻 안엘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배회 했다. 안을 기웃거려보니 술좌석에 앉아 있는 영철이 엄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술상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는 남정네 곁에서 목울대에 시퍼런 핏줄을 내비치며 그녀는 애조 섞인 음색으로, “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라는 <님> 이란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었다.


우리들은 차마 술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노랫소리가 그치자 곧이어 그녀가 술에 몹시 취한 듯 비척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때는 이때다 싶어 영철이가 배가 아파 방안에서 뒹굴고 있다고 알렸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술이 확 깨는 듯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빗속을 총알처럼 내달렸다.

영철이는 그녀 등에 업혀 급히 읍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 아이는 얼마못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애는 맹장이 터져 그 후유증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방안에 달랑 놓여있는 자개가 촘촘히 박힌 반닫이에서 영철이 옷을 꺼냈다 넣었다하며 홀로 <님> 이라는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훗날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영철이 엄마는 어느 부잣집 씨받이로 들어가 한 때는 안방마님 못지않게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철이를 낳은 후 장애를 지닌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그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했다.

홀로 남겨진 그녀가 지닌 것은 다리를 몹시 절고 고개까지 흔들어대는 장애인인 영철이와 그 남자가 사준 반닫이가 전부였다. 자식에 대한 모성을 저버릴 수 없어 호구지책으로 술집에 나가 생계를 이어온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영철이는 비록 장애를 지닌 자식이지만 목숨이나 진배없는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졸지에 영철이를 죽음의 손아귀에 빼앗긴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한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받은 반닫이 뿐이었다. 영철이의 죽음 이후로 실성한 그녀는 그것에다가 거리에서 주워온 잡동사니를 넣고 꺼내며 <님> 이란 노래를 수없이 부르곤 했었다.


그토록 곱상하던 외모도 날이 갈수록 형편없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산발한 머리와 몸에선 역겨운 악취마저 풍겨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무엇보다,“ 내 새끼.” 하며 두 팔을 한껏 벌려 아이들을 끌어안아 그녀와 마주치면 도망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필자는 번개처럼 재빠른 그녀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그녀 품에 수없이 포옹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왠지 그녀 품이 더럽거나 싫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느 땐 초췌한 얼굴에 눈물까지 흘리며 포옹할 때는 어린 마음에도 내가 영철이로 착각하고 있어서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 품에 잠시 포옥 안긴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같이 학교 앞에 나와 등하교 하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려 하던 그녀 모습이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모처럼 마음을 놓으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하굣길이었다.


우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우산을 받쳐 들고 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입구에 다다를 때 저만큼 영철이네 집 마당가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급히 가보니 읍내 파출소 경찰관들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녀가 목숨을 잃는 것이다. 방안에 있는 반닫이에 몸을 의지한 채로였다. 모진 세월을 잘도 견딘다 싶었더니 그예 세상과 하직을 했다. 그녀 시신이 가마니에 싸여 나갈 때 휘황한 자개가 박힌 반닫이도 함께 실려 갔다. 그녀는 진정 목숨보다 더 귀한 ‘님’을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만나고 있을까.

고가구점에서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절제된 미의식을 갖춘 반닫이를 볼 때마다 그녀에 어여쁘던 얼굴도 순간 그 위에 겹쳐지곤 하는 이즈막이다.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곁에서 사라지는 옛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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