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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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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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靑眼을 흐리게 하는 게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위선과 가식은 인간의 본심을 숨기게 하고 진실을 희석시킨다. 그러나 자연은 본색(本色)에 충실하여 결코 너울이 없다. 본연의 모습을 가리지 않은 채 민낯을 오롯이 드러낼 뿐이다.
봄날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라. 아름다운 꽃잎에 한 점 이물이 섞여 있던가. 성하盛夏에 작열하는 태양이 그 뜨거움을 아낀 적 없다. 여름철 쏟아지는 소나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가을바람 역시 갈 곳을 망설이지 않고 불어오곤 한다. 겨울 동장군冬將軍 또한 봄 날 미풍을 거탐 하지 않잖은가.
어디 이뿐이랴. 밤하늘에 찬란한 빛으로 수를 놓는 별들을 보라. 그것들의 황홀경이 퇴색한 적 있던가. 소창小窓을 밝히는 은은한 달빛도 영원하다. 이에 생각이 미치자 참으로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헤아려본다.
폭염에 한껏 달구어진 대지의 지열도 불어오는 바람에 식혀진 듯 모처럼 지옥 염천을 벗어나게 하고 있는 순간이다. 학창 시절 밤하늘 별을 함께 올려다보며 이상을 꿈꿨던 친구들 얼굴이 갑자기 하나, 둘 떠오른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과 샘물처럼 맑은 감성을 지녔던 순진한 소녀들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연극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연극 연습을 하였다. 이 때 6명의 단짝들은 큰 바구니에 튀김, 군만두, 찐빵 등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연극반을 찾은 행상 아주머니의 발길을 묶어놓곤 했었다.
바구니 속의 군것질 거리를 선생님 몰래 학교 뒤 통일 동산에서 먹었던 추억을 어찌 잊으리. 그 때 먹었던 꽈배기, 군만두 맛은 요즘도 좀체 잊을 수 없다.
순정적 사춘기에 이른 무렵이어서 일까? 음악 감상실에 변복變服을 하고 가서 DJ에게 음악을 신청하여 아름다운 선율에 젖기도 했었다.
가슴이 까닭 없이 설레고 정체모를 통증에 시달릴 때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니코마스의 윤리학』, 『영혼에 관하여』,『범주론』, 『명제론』, 데카르트의 『성찰』,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까뮈의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 『전락』, 『최초의 인간』, 『이방인』 등의 서양 철학 책과 소설에 흠뻑 심취하며 마음을 진정 시키기도 하였다.
이것에도 성이 차지 않으면 헤르만 헤세의 시집『낭만적 노래』에 얼굴을 파묻고 지내기 일쑤였다.
소녀 시절 문학에 근접하는 것만으로도 늘 심신이 든든했었다. 밤새워 편지와 일기를 쓰고, 연애 소설 내용에 정신없이 흡인되기도 했었다. 당시엔 세상 모든 만물이 전부 진선미를 품은 듯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당시 여고생이었지만 남달리 조숙했나 보다. 정신적 연령은 어른 못지않았었다. 그 나이에 벌써 우린 만나면 인생을 논하고 진정한 사랑에 대하여 서로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듯 했다. 하물며 불어오는 바람결마저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어디 이뿐이랴.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쳐도, 끼니를 잇지 않아도 피곤하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청춘이야말로 마법과 같은 괴력을 지녔다는 생각이다.
이성을 향한 이상형도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근육질의 우락부락하고 남자다운 기개를 갖춘 남성을 선호하기도 했었다. 질그릇처럼 다소 외양은 투박해도 가슴에 진실이라는 마음의 고갱이가 자리한 남자를 우리들은 최고 연인 상으로 손꼽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 하고 있다. 예전처럼 남자는 더 이상 힘의 상징이 아니다. 한 때는 외모지상주의에 맞게 얼굴이 여자처럼 곱상한 남자가 인기였다. 남녀 간 사랑은 어떤가. 순애보적인 사랑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조차 없다.
사랑 앞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리고 그 계산에 적합해야 결혼도, 사랑도 나누는 세상 아니던가. 순박한 심성을 가슴에서 상실 한 지 오래이다. 오히려 순연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면 별종 취급하고 색안경 끼고 바라보곤 한다. 감동도 무뎌졌다.
남이 베푼 친절, 배려 따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권리로까지 생각할 정도다. 평소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다보니 감동에도 둔감해진 것이다.
이런 세태여서인가. 옛날이 참으로 그립다. 그 때는 가난했지만 가슴엔 꿈이 있었고 희망을 향해 달려갈 길이 항상 눈앞에 놓여있다는 희망에 가슴 설렜다. 지금은 휘황한 문명 불빛 속에 살고 있으나 마음은 늘 허허롭다. 이로보아 풍요만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시금 예전처럼 별빛에 흔들릴 순수한 마음을 되찾고자 백지의 여백을 메워본다. 인생사 희비가 그것에 숨어있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우주마저 아우를 품새 넓은 가슴을 지닌 게 문학이다.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았던 여고 시절부터 짝사랑 해 온 문학이다. 오늘도 문학을 향한 연심戀心 발흥의 방편으로써 심연 깊이 보석처럼 박힌 언어 채굴을 위하여 전력을 다할까 한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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