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열 목사 목회 칼럼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끼리끼리 잘해주는 것, 그것이 정말 ‘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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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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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범죄 조직인 마피아나 야쿠자들에게도 그들만의 견고한 ‘선의’와 ‘의리’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들은 조직원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은혜를 입으면 확실하게 보답하며, 때로는 지역 사회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며 자신들의 선량함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향해 결코 ‘선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여주는 친절은 철저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조건적’인 행동이며, 자기 식구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만 갇힌 이기적인 선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6장은 이런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를 향해 아주 불편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 테레사 수녀는
"강렬한 사랑은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건 없이 주는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베푸는 친절과 선행이 만약 ‘내가 이만큼 베풀었으니 언젠가는 상대가 알아주거나 돌려주겠지’ 하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숭고한 사랑이 아니라 냉정한 비즈니스적 ‘투자(Investment)’에 불과합니다.
투자는 나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으면 즉시 멈추게 되고, 상대가 내 기대에 못 미치면 즉각적인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선은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깨뜨려 드리는 ‘예배(Sacrifice)’이자 거룩한 희생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정중히 대우해 주는 사람에게만 친절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본능입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고, 심지어 나를 무시하거나 해를 입히려는 사람에게까지 선의를 베푸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진짜 선’의 시작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46절은 이 도전을 극대화하여 우리의 잠든 영혼을 강하게 깨웁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상의 논리는 늘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에 머물러 있지만, 하늘의 부르심을 따르는 삶은 그 수준 낮은 논리를 뛰어넘어 원수조차 품어내는 넉넉한 자비를 지향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의 ‘죄인들’ 수준을 넘어 진짜 존경 받는 어른으로, 혹은 품격 있는 신앙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오늘 나의 선의가 과연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그 유효기간과 범위를 다시 한번 정직하게 점검해 보십시오.
[조건 없는 사랑을 위한 실천 사항]
첫째, 이번 주에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모르게 ‘익명의 친절’을 누군가에게 베풀어 보십시오.
둘째, 준 만큼 받지 못해 속상했거나 서운함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조용히 떠올려보고, 그 마음의 빚을 오늘 아무 조건 없이 탕감해 주기로 결단해 보십시오.
셋째, 평소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했던 사람을 향해 내가 먼저 따뜻하고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보십시오. 그 ‘장한 일’이 당신의 영혼을 비로소 위대하고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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