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수당 받으려면 약물검사?…국민당 복지공약 논란

국민당 “취업 의무에 걸맞은 조치”
노동당·녹색당 “잔인한 복지 수급자 때리기” 반발
국민당(National)이 실업수당(Jobseeker Support)을 받는 구직자들에게 약물검사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면서 정치권에서 거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당(Labour)과 녹색당(Greens)은 이를 ‘잔인하고 모욕적인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뉴질랜드 제일당(NZ First)의 윈스턴 피터스 대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경우 “파시즘적 행동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국민당과 ACT당은 약물검사가 구직자의 취업 준비 의무와 관련해 충분히 정당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국민당, 약물검사와 장기 수급자 지원금 삭감 추진
국민당의 사회개발 담당 대변인 루이스 업스턴(Louise Upston)은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에 대한 약물검사가 충분히 합리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국민당은 약물검사 외에도 최근 3년 중 2년 이상 복지수당을 받은 사람에 대해 지급액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정당한 이유 없이 직장을 반복적으로 그만두는 사람에 대해서는 수당 지급 정지 기간(stand-down period)을 두 배로 늘리는 방안도 제시했다.
국민당 측은 복지수당을 받는 사람에게도 취업을 준비하고 실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책임이 있으며, 많은 직종에서 근로자들에게 약물검사가 요구되는 만큼 구직자에 대한 검사 역시 지나친 조치가 아니라는 논리다.
노동당 “일자리가 아니라 복지 수급자 공격에 집중”
노동당은 국민당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동당 선거운동 책임자인 키런 맥널티(Kieran McAnulty)는 이번 공약을 두고 “솔직히 말해 터무니없고, 일자리를 간절히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모욕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강경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맥널티 의원은 과거 Work and Income에서 케이스 매니저로 일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 스스로 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일부러 수당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실업수당 수급자들을 단순히 ‘게으른 사람’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당이 정말 복지수급자들을 무작위로 약물검사하겠다면 국민당 국회의원들도 무작위로 약물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반문했다.
녹색당 “이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또 공격”
녹색당 역시 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공동대표 마라마 데이비슨(Marama Davidson)은 국민당의 정책을 “잔인하다”고 규정하며, 이미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수급자 때리기’라고 비판했다.

데이비슨 대표는 이번 정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해법이 아니라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색당 공동대표 클로이 스워브릭(Chlöe Swarbrick)도 국민당이 제시한 20만 개의 일자리 창출 전망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실업 상황이 심각한 만큼 정부가 낙관적인 일자리 전망만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워브릭 대표는 크리스토퍼 럭슨 총리가 말하는 일자리가 실제 구직자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사람들은 럭슨의 유령 일자리(ghost jobs)를 가지고 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피터스 “개인의 자유에 대한 공격 될 수 있어”
뉴질랜드 제일당 대표 윈스턴 피터스는 한발 더 나아가 개인의 자유 침해 가능성을 경고했다.
피터스 대표는 복지수당 수급자에 대한 약물검사가 확대될 경우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거대한 공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정책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경계해야 한다며, 자칫 “파시즘적 행동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강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크리스토퍼 럭슨 국민당 대표가 국회의원들에 대한 약물검사 가능성에도 열려 있다고 밝히자 피터스 대표 역시 국회의원 약물검사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ACT “일할 의무가 있다면 약물검사도 받아야”
반면 ACT당의 데이비드 시모어(David Seymour) 대표는 국민당의 약물검사 정책을 지지했다.
시모어 대표는 복지수당을 받는 것이 단순히 생활방식으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제도라면 약물검사를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벽부터 출근해 위험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 근로자들이 약물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을 하지 않고 약물을 사용하면서도 그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시모어 대표는 이를 강한 표현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약물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당이 제시한 장기 수급자에 대한 지원금 삭감 방안에 대해서는 ACT의 입장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ACT는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금액 자체를 줄이기보다 전자식 소득관리(electronic income management)를 통해 임대료와 전기요금 등 필수 지출을 우선 관리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시모어 대표는 복지수당의 사용처를 일정 부분 제한하는 대신, 취업을 하면 개인이 보다 자유롭게 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년 복지수당 제한 정책도 쟁점
이번 논란은 최근 뉴질랜드의 복지제도 개편 논쟁과도 맞물려 있다.

노동당은 최근 정부가 도입한 18~19세 청년층에 대한 Jobseeker 수급 제한 정책을 반대해 왔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은 내놓지 않기로 했다.
맥널티 의원은 노동당이 해당 정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당의 재정계획을 현실적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일부 정책에서 타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번 선거에서는 복지수당 수급자의 권리와 책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약물검사, 장기 수급자 지원 수준 등이 주요 정치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복지 책임 강화’인가 ‘복지 수급자 때리기’인가
국민당의 공약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결국 복지수당을 받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의무와 조건을 부과할 것인가에 있다.

국민당과 ACT는 납세자의 세금으로 지급되는 복지수당인 만큼 수급자에게도 취업을 위한 책임과 의무가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당과 녹색당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고용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약물검사가 실제 취업 가능성을 높이는지, 아니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장벽과 낙인을 만드는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질 전망이다.
뉴질랜드의 생활비 상승과 고용시장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는 ‘복지의 권리와 책임’이라는 오래된 논쟁이 약물검사라는 새로운 쟁점을 중심으로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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