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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고급 노예

47분 전
3분 분량


어린 날 꿈은 대통령이었다. 이는 동심에 의해서였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국어를 잘해야 모든 교과서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논리적인 사고력이 향상된다고 강조하곤 했다. 이런 교육관 때문인지 선생님이 매일이다시피 내주는 숙제는 국어 교과서의 어려운 낱말 조사, 문단 나누기, 줄거리 쓰기 등이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유익하다할 국어 공부를 선생님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습득한 셈이다.

 

당시엔 친구들과 고무줄놀이에 골몰하느라 학교 숙제가 지긋지긋했다. 자라서 대통령이 된다면 어린이들에게 늘 압박감을 안겨주는 많은 숙제만큼은 내주지 않겠노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때부터 대통령의 꿈을 가슴 속에 야무지게 키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야 말로 얼마나 힘든 위치인가를 스스로 깨우치는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신문 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어머닌 신문을 구독해 우리들에게 읽도록 독려했다. 이 때 초등학교 고학 년 때엔 신문에 난 세태 풍자만화, 사설 및 경제, 정치 등의 사회면 기사는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는 견문을 갖출 수 있는 창窓 역할을 해주고도 남음 있었다. 이 때문인지 어느 날 신문 기사를 읽은 후 그토록 가슴에 품어왔던 대통령의 꿈을 끝내 접었다. 왜냐하면 신문에 난 이런 기사 내용 때문이었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집권 말기 베트남 전쟁에 신물이 난 국민들에게 외면당했다. 그는 1968년 재선에 나서지도 않은 채 고향 텍사스 목장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곳에서 정치에 대한 회한과 좌절을 홀로 삭이며 밤낮 술을 퍼마신 탓에 심장병이 발병 했다고 하였다. 그의, "지난 6년이나 국가를 통치하였으나 제대로 이룬 게 없어 부끄럽다" 이 마지막 연설문을 읽은 것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1972년 겨울쯤의 어느 신문 기사에서였다.

 

그는 이 말을 남긴 한 달 후 자신의 집 마루에서 심장병으로 홀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내용을 신문에서 접한 후 어린 마음에도 대통령이라고 온갖 호사를 누리고 매사를 마음대로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했다.

 

하긴 비근한 예로 고인이 된 김영삼 대통령의 일화만 떠올려 봐도 그 자리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임기를 한 해 남긴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사람들을 불러놓고, "청와대가 감옥 입니다. 모두 퇴근 후 아내와 둘만 남으면 적막강산도 그런 적막강산이 없어요" 라고 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마당가에서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가에 훨훨 날아오르는 새들조차 부러워했을 법하다. 뿐만 아니라 퇴임 닷 새 전엔 기자들에게, " 지난 5년 동안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라고 한 말도 매우 인상 깊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경우 세계 강국인 미국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린든 존슨은 재임 시 자신이 남긴 정치적 성취를 스스로 평가 절하 하리만치 그 자리에 준하는 업적을 이루지 못한 자책감에 시달린 듯하다. 김영삼 대통령 역시 개인적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 따윈 포기한 채 국정 운영에 몰두하다보니, 사실 그 자리도 영예로운 권좌만은 아니라는 의미아닌가.

 

19세기 영미 전쟁의 영웅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숭배를 받았던 대통령이었다. 그런 잭슨 대통령도 훗날, "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의 대통령 시절은 고급 노예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라고 토로할 정도였으니. 미국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도 알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갑갑하고 고독한 장소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최고로 명예롭고 제왕적 인물로 묘사되는 대통령들이다. 이들도 엄밀히 따지면 가슴엔 인간적인 고뇌와 희로애락을 지닌 한 인간이었다. 중절모를 눌러 쓰고 지팡이를 짚은 노신사가 걷는 실루엣이 새겨진 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엔 어떤 설명도 없다. 미국 미주리 주 도시 인더펜던스에 세워진 표지판이 그것이다.

 

이 표지판들은 트루먼 대통령이 늘 산책하던 곳곳에 세워져 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53년 퇴임 후 육군 연금 111달러를 받으며 '트루먼의 오두막집'에서 20 여 년 동안 소박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친구들과 오두막 테라스에 앉아 체스를 뒀고 트루먼 기념 도서관에서 사서司書 일을 돕기도 했다.

 

이런 인간미 물씬 풍기는 트루먼을 떠올리자 그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감옥행을 감수한 이들이 다수잖은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영욕의 덫에 발목을 잡힌 결과였다. 또 있다. 스스로 국가를 전복 시키려 했던 어리석은 대통령도 우린 겪었다. 이제는 현재 대통령도 임기를 마친 후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업적을 새롭게 평가받고 존경받는 트루먼 대통령 같은 지도자이길 감히 기대해본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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