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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언어가 두뇌를 젊게 한다?

2시간 전
5분 분량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울 때마다 뇌에 새로운 운동을 시키는 셈”


 

뉴질랜드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꽤 반가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생활하는 것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편의를 넘어 뇌 건강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특히 한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보다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빠른 뇌 노화(accelerated ageing)’를 경험할 가능성이 낮았고, 사용하는 언어가 많을수록 그 연관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학술지 Nature Aging에 지난해 11월 발표된 연구는 유럽 27개국의 51~90세 성인 8만6,149명​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신체적·인지적·기능적 건강 등을 바탕으로 실제 나이에 비해 생물행동학적으로 노화가 얼마나 빠르거나 느린지를 살펴봤다.

 

연구 결과, 한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은 빠른 노화와 관련된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위험이 낮았다.

 

연구진의 분석에서 다언어 사용자는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가속화된 노화의 위험이 낮았으며, 추가로 사용하는 언어의 수가 늘어날수록 보호적인 연관성도 커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한 언어보다 두 언어, 두 언어보다 세 언어?

이번 연구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언어의 수가 늘어날수록 효과가 커지는 양상’​이다.

 

연구진은 추가 언어를 하나 사용하는 경우, 두 개를 사용하는 경우, 세 개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를 비교했으며, 추가 언어의 수가 많아질수록 빠른 노화와 관련된 위험이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패턴을 확인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이 연구가 “외국어를 하나 배우면 뇌가 몇 년 젊어진다”거나 “외국어를 배우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이 관찰한 것은 언어 사용과 노화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이다. 따라서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원래 교육 수준이나 사회활동, 건강상태 등 다른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2026년에는 이 연구의 방법론과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술적 비판도 발표됐다. 따라서 이번 연구를 ‘외국어 학습이 노화를 늦춘다는 확정적 증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언어 사용과 뇌 건강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오클랜드 전문가가 주목한 ‘인지 예비력’

뉴질랜드에서는 오클랜드대 심리의학과의 에투 마우(Dr Etu Ma’u) 박사가 이번 연구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내놨다.

 

마우 박사는 치매와 노화에 대한 연구를 하는 노년정신의학 전문가로, 이번 연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뇌가 평생 동안 축적되는 손상과 변화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지 예비력이란 쉽게 말해 뇌에 변화나 손상이 생기더라도 기존의 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여유분’과 같은 개념이다.

 

마우 박사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이러한 인지 예비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가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언어 학습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한인들에게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

이 연구가 뉴질랜드 한인사회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이유가 있다.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이미 일상에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직장이나 학교, 관공서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자녀들은 영어가 더 편할 수 있지만 부모와 조부모에게는 한국어가 더 자연스럽다.

 

가족 안에서도 언어가 섞인다. “엄마, 이거 뭐라고 해?” “그건 영어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할머니,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이처럼 한인 가정에서는 세대 간 언어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환경 자체가 하나의 인지적 자극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어와 영어는 문자체계부터 문법과 어순, 발음까지 상당히 다르다. 두 언어를 오가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는 단순히 단어를 암기하는 것뿐 아니라 상황에 맞는 언어를 선택하고, 표현을 바꾸고, 상대방의 언어 수준에 맞춰 의사소통해야 한다.

 

이 과정이 뇌를 계속 사용하게 만드는 하나의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번 연구는 이민 2세와 3세 자녀를 둔 한인 부모들에게도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를 던진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하는 한국계 어린이에게 한국어는 때때로 ‘영어 공부를 방해하는 언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 하나를 더 배우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에게 가족과 조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물려주는 일이면서 동시에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클랜드대의 마오리·원주민 교육 전문가 스티븐 메이 교수 역시 전문가 의견에서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다언어 사용이 국제적으로 매우 흔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영어뿐 아니라 te reo Māori와 수많은 이민자 언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를 지역사회에서 유지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의 측면뿐 아니라 언어 학습과 인지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외국어를 시작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배우고 싶다면 시작해도 된다.

 

이번 연구 하나만으로 외국어 학습을 치매 예방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는 뇌를 사용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새로운 단어를 기억하고, 문장을 만들고, 발음을 연습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적절한 표현을 선택해야 한다.

 

게다가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문화와 음악, 영화, 음식, 역사에 접근할 기회도 늘어난다.

 

따라서 외국어 학습은 두뇌 자극과 사회적 연결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

 

60대, 70대에도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

가능하다.

 

오히려 이번 연구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언어 학습은 어린이만의 활동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 새로운 단어를 외우는 속도나 발음을 익히는 속도가 젊을 때보다 느려질 수 있다.

 

하지만 언어 학습에는 기억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듣고, 말하고, 읽고, 생각하고,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는 모든 과정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70대 한인 교민이 영어 회화 수업에 참여하거나, 영어가 모국어인 손주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손주에게 한국어 표현을 가르치는 것 역시 하나의 언어 활동이다.

 

반대로 영어가 편한 자녀가 부모에게 한국어 표현을 하나씩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세대 간 연결을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두뇌 운동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치매 예방’보다 더 넓게 봐야 한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질환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위험요인과 뇌의 변화가 축적된 결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뇌 건강 역시 나이가 많이 든 뒤에 갑자기 관리하기 시작하는 것보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언어 학습 역시 이러한 평생의 뇌 건강 관리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 하나만으로 뇌 건강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규칙적인 신체활동, 충분한 수면, 사회적 관계 유지, 심혈관 건강 관리, 교육과 지속적인 인지 활동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중요하다.

 

따라서 “외국어를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은 피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다언어 환경’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뉴질랜드 한인사회가 굳이 새로운 환경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다언어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어를 잊지 않으면서 영어를 배우고, 필요하다면 마오리어나 다른 언어까지 접할 수 있다.

 

부모에게는 영어가 두 번째 언어이고, 자녀에게는 한국어가 두 번째 언어인 가정도 많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언어 능력을 주로 ‘취업 경쟁력’이나 ‘자녀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하지만 앞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뉴질랜드에서는 언어를 문화와 가족을 이어주는 도구이자 평생의 두뇌 자극 활동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은 거창한 외국어 공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손주에게 한국어 단어 하나를 가르치고, 평소 보지 않던 영어 뉴스 한 편을 읽고, 여행을 위해 새로운 표현 몇 개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두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을 계속 사용하고, 한 언어를 더 배우고 싶다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뇌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학습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단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듣고, 기억하고, 사람과 연결되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연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는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 너무 이른 때도, 너무 늦은 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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