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위기의 땅에서
- WeeklyKorea
- 6월 13일
- 3분 분량

왼쪽 손가락을 유심히 살펴본다. 집안일 탓인지 지문이 닳아 흐릿하다. 갑자기 왼손가락 지문을 살핀 것은 친구와 나눈 전화 통화에 의해서다. 네 명의 아들을 낳은 친구다. 딸만 셋인 내가 그녀는 마냥 부럽단다.
이즈막 부쩍 살갑게 대해주는 딸들의 따뜻한 정이 못내 그립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네 명의 아들 중 셋은 수년 전 이른 나이에 각 각 결혼, 일가一家를 이룬 가장이 됐단다. 세 아들이 결혼 후 더욱 자신과 멀어지는 느낌이란다.
반면 필자는 평소 네 명의 아들을 둔 그녀가 늘 든든해 할 듯하였다. 인간은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에 미련이 많아서일까? 아님 구시대적 발상일까? 딸만 셋이다 보니 은연중 아들을 넷을 둔 친구를 부러워 했나보다.
친구는 전화 통화로 한동안 딸 한 명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가 뜬금없이 왼손 손가락을 살펴보라고 권한다. 소용돌이무늬의 지문이 많으면 딸을 많이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나.
예로부터 왼손 손가락에 말발굽 쇠 무늬의 지문이 많은 여인이 아들을 잘 낳는단다. 자신은 그 손가락에 이 무늬 지문이 선명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녀 말에 필자의 왼쪽 손 손가락을 돋보기까지 쓰고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좀체 보이질 않는다.
그녀 말 대로 혹시 소용돌이무늬의 지문이 많은 게 아닐까? 왼쪽 손 손가락 지문이 자뭇 궁금하다. 만약 이 무늬가 많다면 옛날 같음 시집도 못 갔을 뻔 했다. 우리의 전통 사회에선 남아선호 사상이 깊게 뿌리내리지 않았던가.
아들을 낳고 못 낳는 일은 여인의 행, 불행을 좌우하는 중대차한 사안이 아니었던가. 예전엔 아무리 조강지처라 하여도 본처가 아들을 못 낳으면 버젓이 씨받이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던가.
이런 남아선호 사상이 짙었던 관습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강하게 여성의 삶을 지배하기도 했다. 친구 말에 어느 문헌을 살펴봤다. 이규태 글 ‘지문’에 의하면 우리나라엔 아들을 생산生産할 수 있는 것을 미리 알아보는 예지의 민속이 예부터 발달했다고 적혔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옛날엔 종가에선 혼담이 오갈 때 예비 신부의 왼손 다섯 손가락 지문을 찍어 보내는 일까지 있었단다.
여기서 소용돌이무늬는 출구 없이 막힌 지문이며 말발굽 쇠 무늬는 출구가 트인 지문이란다. 말발굽 쇠 무늬 지문이 흡사 여인의 자궁을 닮아 그렇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체는 그 어느 것 하나 무의미 한 게 없는 듯하다. 하다 못하여 여인네 손가락 지문까지 인간 희로애락과 삶의 가치에 의미 부여를 하잖은가. 이로보아 우린 남아 선호사상 때문에 지문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는가보다.
이와 달리 서양에선 신분 증명을 위하여 지문을 사용 한 것은 1880년경이란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부녀자, 노비의 재산을 문서화 할 땐 좌촌左寸이라 하여 왼손 중지 첫마디 지문을 찍거나 수장手掌이라 하는 오른손 전체의 장문掌紋을 찍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간절한 소원을 신에게 비손 할 때도 장문을 찍었단다. 이런 습속 외에 멀리 떨어져 있는 기첩妓妾이 변심 하지 않고 님 향한 사랑이 아직도 뜨겁다는 연서를 부칠 때도 그 내용에 손바닥 도장을 찍기도 했나보다.
이게 아니어도 안중근 의사 장문은 그의 투철한 애국심을 한 눈에 읽게 한다. ‘독립’이라는 글자 곁에 찍힌 그의 손바닥 도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명지가 잘려 있다. 이는 안중근 의사의 항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 표명이었다. 이로보아 지문 및 장문은 우리의 신용 및 계약, 또는 사랑, 애국심을 증표 하는 정신적 보장을 해온 아름다운 매체였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편 범죄 수사에도 이 지문은 유일하게 활용되고 있다. 저마다 독특한 무늬인 지문은 개개인마다 그 흔적이 다르다고 한다. 이 지문을 범죄 수사에 적용, 일찍이 발달시킨 국가는 영국 및 미국에서 일이였다.
하지만 지문이 범죄 증빙으로 사용 되자, ‘신이 그 사람의 동일임을 증명한 유일한 신성한 흔적’이라며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단다. 지문을 범죄에 이용하는 일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이를 비판한 사람은 미국 문학의 대부 마크 트웨인이란다.
그러고 보니 우린 지금 여인네의 소용돌이무늬 및 말발굽 쇠 무늬 손가락 지문 따윌 가릴 것이 아니다. 인구 절벽인 우리에겐 젊은 여성들이 올 한 해엔 아기를 한 사람당 네, 다섯 명씩 낳았으면 좋겠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랴. 옛날 어른들 말씀처럼 저마다 먹을 복은 타고나니 걱정 말고 아기나 쑥 쑥 낳아달라고 젊은 여성들에게 주문한다면 설마 몰매 맞진 않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몰매를 맞을지라도 이런 주제 넘는 권유를 간절히 해본다. 인구 감소로 말미암아 머잖아 지구상에서 ‘한국’이라는 지도가 사라지는 비극보다 낫지 않으리.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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