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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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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초를 겪을 때 ‘피땀 흘린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이 겪는 고역의 한계를 의미하는 듯하다. ‘피와 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단한 인내와 노력을 이르는 말'로 표현 했다.


필자 같은 경우 피와 땀을 흘리는 일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피눈물’ 역시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몹시 슬프고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연유에서였나 보다. 어려서 어머니는 밥상머리 교육 중 “남의 눈에 피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을 행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들려줬다. 특히 남자 형제들에겐 훗날 자라서 어른이 되면 무엇으로든 여자를 울리는 일은 절대 행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즉 여인의 가슴에 한恨을 맺히게 하는 그릇된 언행을 하지 말라는 뜻임을 훗날에야 깨우쳤다.


남성 권위주의가 유독 강하던 그 시절, 어머니 말씀은 다소 설득력이 있었다. 그 시절만 하여도 다수의 여성들은 남자에 의하여 삶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하지만 요즘은 여권이 신장한 탓인지 젊은 여성들의 삶은 우리 세대와 양상이 달라졌다. 여자도 충분히 남자 눈에 뜨거운 눈물을 고이게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날 우리들 의식 속엔 눈물은 여인만이 흘리는 일로 간주했다면 지나칠까? 어려서부터 남자는 감정 표현을 억제해야 했다. 아무리 슬퍼도 결코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가정 교육 때문인지 특히 베이비붐 세대 남자들은 은연중 눈물 흘리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삶을 살면서 피눈물을 흘릴 때는 타인으로부터 음해와 모함을 당할 때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 억울하고 분노할 일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이런 일은 삶 속에서 비일비재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생존경쟁이 치열한 현대에서 삶을 사는 우리로선 크고 작든 간에 타인에 의한 음해 및 모함을 당하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며칠 전 호수 둘레 길로 산책을 나갔을 때 일이다. 어느 여인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주먹으로 연신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남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침 손에 든 새것의 생수 병을 그녀에게 말없이 건네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맙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눈물을 거둔 그녀 곁에 앉아 조심스레 울고 있는 사연을 물었다.

여인은 어느 공장에 근무하는데 매사 성실하여 상사로부터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왔단다. 이에 시샘을 한 몇 몇 동료들에 의하여 모함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도 아닌데 덮어씌우는가 하면 여러 명의 직장 동료들이 합세하여 급기야는 중상모략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어렵사리 구한 직장마저 잃게 되었단다. 그녀는 직장에서 쫓겨나자 당장 병든 남편 병원비는 물론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울먹인다.


초면이지만 그런 그녀가 왠지 안쓰러웠다. 직장 내에서 집단적 따돌림이나 모함 및 음해 등은 혼자 힘으로 막아내기엔 불가항력의 일이다.


그녀는 평소 말 한마디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소한 일로도 해코지 안하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알고 살아왔다고 했다. 이런 선한 품성을 지닌 그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직장 동료들의 모함이기에 더욱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을 내게 건네면서 그녀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 젖은 모습을 보자 어느 한시漢詩에서 읽은 눈물에 대한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소리 없이 주르륵 흐르는 눈물은 ‘체滯’라 하였다. 이 날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여인의 눈물은 아마도 이 ‘체滯’에 해당 될 성 싶었다.


애소哀訴가 강한 어느 여인의 눈물을 보면서 왜? 인간은 이리도 타인에게 몰인정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타인은 지옥’이란 말이 맞는 성 싶었다. 사소한 눈앞의 이익 때문에 아무런 잘못 없는 여인을 모함하는 자들 가슴 속엔 일말의 양심이란 게 존재할까? 하는 의문도 일었다.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가 귀하면 타인 것도 소중하잖은가. 나 자신의 어떤 잇속을 챙기자고 없는 죄를 만들어 남을 옭아매는 올가미로 삼다니, 이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치졸한 행태가 어디 있으랴.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이득을 계산하여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피해야 할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치유 될 수 없는 고통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사람에게 받는 상처다.

육신이 칼에 베이면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이 가한 마음의 베임은 묘약이 없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제 눈의 눈에선 머잖아 피눈물이 흐른다” 라고 했다. 타인을 까닭 없이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곧 자신도 벌을 받아 홍루紅淚를 흘린다는 뜻이다.


이로보아 가슴 속 손수건으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사람다운가. 필자부터 그 일에 힘을 아끼지 않을까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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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 2021년 계간지. 《에세이 포레》수필 평론 부문 <서정과 삶의 집적>으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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