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10년 안에 ‘초고령사회’
우리 도시는 준비됐나?

요양원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우리가 매일 걷는 길과 사는 동네다
뉴질랜드가 앞으로 10년 안에 공식적인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령화에 대비한 도시와 지역사회의 준비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고령화 논의는 주로 연금과 슈퍼애뉴에이션, 병원과 요양시설, 의료 인력 부족 문제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고령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함께 살펴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집과 거리, 동네와 지역사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의 95.2%가 비(非)민간시설이 아닌 일반적인 사적 주거(private dwelling)에서 생활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노인은 요양원이나 병원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요양시설을 얼마나 더 지을 것인가’만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나이 들어도 계속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반드시 의존한다는 뜻이 아니다
인구 고령화는 출산율 하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의료기술과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사람들이 더 오래 살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줄어든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령화는 사회 발전의 결과라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나이가 많아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도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가 뒷받침하느냐에 있다.
특히 65세 이상 인구가 모두 동일한 집단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60대와 70대, 80대와 90대의 생활 방식과 건강 상태, 주거와 이동에 대한 필요는 크게 다르다.
따라서 고령사회 정책 역시 ‘노인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기보다,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생활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고령친화도시’는 노인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다
이 같은 접근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및 지역사회(Age-friendly Cities and Communities) framework다.
WHO가 제시하는 고령친화 지역사회는 단순히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행하기 편한 거리와 건물, 이용하기 쉬운 교통수단, 적절한 주거환경, 사회활동 참여 기회, 세대 간 교류, 시민 참여, 정보 접근, 지역사회 지원과 보건서비스 등 일상생활의 여러 요소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들이 중요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노인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가.
보도에 턱이나 장애물이 너무 많지는 않은가.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야 하지는 않는가.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아도 병원이나 슈퍼마켓, 도서관에 갈 수 있는가.
공원이나 광장이 단순히 예쁜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만나고 머물 수 있는 장소인가.
온라인으로만 제공되는 행정서비스 때문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불편을 겪지는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노인들이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다.
이러한 문제는 고령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유모차를 끄는 부모, 어린이, 일시적으로 다친 사람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문제다.
결국 고령친화도시는 ‘노인을 위한 도시’라기보다 모든 세대가 살기 편한 도시에 가깝다.

이미 움직이고 있지만 지역별 차이는 크다
정부의 고령자 담당 기관인 Te Tari Kaumātua(Office for Seniors)는 WHO의 고령친화도시 접근법을 바탕으로 ‘Age-friendly Aotearoa New Zealand’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 현재 전국의 36개 도시·지역이 Age-friendly Network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 지역은 자체적인 고령친화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
국제적인 WHO 네트워크에 참여한 뉴질랜드 지역도 있다.
현재 WHO 글로벌 네트워크 참여 지역은 Auckland, Hamilton, New Plymouth, Napier, Palmerston North, Wairarapa, Nelson, Gore 등 8곳이다.
이는 과거에 비해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WHO 글로벌 네트워크에는 현재 전 세계 60개국, 1,829개 도시·지역이 참여하고 있으며 4억 명 이상이 그 범위에 포함돼 있다.
아직 더 많은 지역에서 체계적인 고령친화 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Christchurch와 Dunedin처럼 주요 도시들도 앞으로의 고령화에 맞춰 보다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지역으로 꼽을 수 있다.
집을 바꾸는 것만큼 ‘동네’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통계청의 최신 주거 자료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65세 이상 인구의 95.2%가 2023년 기준 일반적인 민간 주거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65세 이상 인구의 상당수는 자신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원한다.
따라서 고령화 대책을 요양원이나 은퇴촌 건설에만 집중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집 안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욕실을 개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 문을 나선 순간부터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가 역시 중요하다.
예컨대 집 앞 보도가 울퉁불퉁하거나 경사가 심하고, 횡단보도의 신호시간이 짧으며,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길에 쉴 벤치가 없다면 집이 아무리 편리해도 독립적인 생활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미래의 도시계획에서는 ‘주택’과 ‘교통’, ‘보행환경’, ‘공공시설’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령친화적인 도시는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뉴질랜드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좋은 의도를 실제 결과로 연결하는 것이다.
고령친화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지표를 설정할 수 있다.
보행 가능한 보도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버스정류장과 주요 생활시설까지의 평균 접근거리는 얼마인가
공공시설의 무장애 접근성은 어느 수준인가
지역 내 벤치와 화장실 등 휴식공간은 충분한가
노인들의 지역사회 활동 참여율은 변화하고 있는가
고령자의 대중교통 이용은 실제로 증가했는가
세대 간 프로그램과 지역사회 활동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가
측정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지방정부가 고령친화 정책을 도시계획과 교통정책, 주택정책, 공공서비스의 핵심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대가 함께 사는 도시’가 미래의 도시다
고령사회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고립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직장에서 은퇴하고, 배우자나 친구를 잃거나, 운전을 중단하거나, 이동성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도시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이동 편의만이 아니다.
도서관과 커뮤니티센터, 공원, 시장, 스포츠시설, 종교시설, 카페와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세대가 분리된 공간만 만드는 대신 어린이와 청년,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Hamilton의 고령친화도시 사례에서는 도서관과 노인 관련 단체, 놀이그룹 등이 협력해 세대 간 이야기 나누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지역사회의 연결을 강화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고령자를 사회적 부담으로 보는 관점과는 다르다.
노년층은 지역사회에서 소비하고, 일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가족을 돌보고,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활동적인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에도 중요한 문제
이 문제는 한인사회에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민 1세대가 본격적으로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한인사회 역시 앞으로 주거, 교통, 의료서비스 접근,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디지털 격차 등의 문제를 더욱 많이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고령 이민자에게는 일반적인 고령화 문제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하나 더해질 수 있다.
병원이나 정부기관의 정보가 영어로만 제공되거나, 온라인 예약과 디지털 행정서비스가 일상화될수록 이러한 격차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한인사회 역시 단순히 노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 카운슬과 협력해 한인 고령자들이 실제로 지역사회 정책과 도시계획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인 교회와 성당, 사찰, 한인회, 노인단체, 복지기관, 지역 상점과 의료기관 등이 서로 연결된다면 지역사회 차원의 대응도 가능하다.
이미 시작된 지원도 있다
정부는 Age-friendly Fund를 통해 지역사회가 고령친화 정책을 만들거나 실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26년 지원금은 사업 규모에 따라 5,000~20,000달러(GST 별도)이며, 올해 신청 마감일은 9월 30일이다. 또한 지방정부의 고령친화 정책·전략·실행계획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재원도 마련돼 있다.
이는 고령친화도시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지역 단위에서 실제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의미다.
2034년, 우리가 맞이할 도시의 모습은 지금 결정된다
정부는 2034년이면 뉴질랜드 인구의 5명 중 1명 이상, 약 120만 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때가 되면 고령화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부모와 조부모의 문제이면서, 현재 40~50대인 사람들에게는 바로 자신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지금의 20~30대 역시 언젠가는 그 사회에서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노인을 위한 별도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걸을 수 있고, 버스를 탈 수 있고, 장을 볼 수 있고, 친구를 만날 수 있으며,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고령화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은 사회가 축하해야 할 변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변화에 도시가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다. 10년 뒤 뉴질랜드가 초고령사회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제야 보도를 고치고, 버스 노선을 바꾸고, 공공주택을 설계하고, 고령자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준비할 것인가. 뉴질랜드의 초고령사회는 이미 정해진 미래다. 하지만 그 미래의 도시 모습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뉴질랜드교민 #뉴질랜드사회 #초고령사회 #고령사회 #고령친화도시 #AgeFriendly #Aotearoa #NewZealand #노인복지 #시니어복지 #도시계획 #주거정책 #대중교통 #세대통합 #한인사회 #오클랜드 #웰에이징 #AgingWell


.jpg)





![[안기종 발행인 칼럼] 고령사회로 가는 뉴질랜드, 시계를 멈춘 채 걷고 있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dbf97_f12f186114ce4a6f8ae23f5b2ed17ef6~mv2.png/v1/fill/w_980,h_980,al_c,q_90,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dbf97_f12f186114ce4a6f8ae23f5b2ed17ef6~mv2.png)











.jpg)











.jp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