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석면으로 매년 220명 사망 '곳곳이 지뢰밭'
금지 10년 지나도 주택 곳곳에 위험 잔존

“드릴을 사용하기 전 석면부터 확인해야”
전기 기술자로 일했던 49세 남성, 희귀 암 투병하며 DIY 작업자들에게 경고
뉴질랜드에서 석면 수입과 석면 제품 사용이 금지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과거 건축자재에 사용된 석면으로 매년 약 220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0년 이전에 건축되거나 개조된 주택에는 석면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어 전문 기술자는 물론 일반 가정의 DIY 작업자들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뉴질랜드 산업안전보건청(WorkSafe)에 따르면 석면은 뉴질랜드에서 업무 관련 사망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2005년 이후 사고보상공사(ACC)가 승인한 석면 관련 보상 청구는 3,200건을 넘어섰으며, 지급된 보상금은 총 3억2,000만 달러 이상이다.
1News가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ACC는 지난해 석면 관련 보상금으로 약 2,5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이는 최근 20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앞으로도 최소 10년 동안 상당한 규모의 보상금 지급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석면 노출로 희귀 암 진단받은 전기 기술자
이번 경고는 석면 노출로 희귀하고 공격적인 암에 걸린 인버카길 출신 앤드루 윈더(49)의 사연을 통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윈더는 석면 노출로 발생하는 악성중피종 가운데서도 발생 빈도가 낮고 진행 속도가 빠른 육종양 중피종(Sarcomatoid Mesothelioma)을 앓고 있다.
그는 20대 초반 전기 기술자 견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오래된 전기 배전반을 교체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배전반 뒤쪽에 설치된 어두운색 받침판에 구멍을 뚫는 일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해당 판재에 석면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당시 수백 개의 판재에 구멍을 뚫었다고 회상했다.
윈더는 “어떤 사람들은 상식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떤 자재에 석면이 들어 있는지 알아야만 상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며 “당시에는 위험 요소에 대한 교육이나 안전회의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을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끝내고 현장을 떠나는 것이 당시 교육의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2020년부터 심한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을 겪기 시작한 그는 수십 차례의 검사와 조직검사를 거쳐 지난해 6월 육종양 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이런 암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의료진은 이 암이 일반적인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면역치료가 사실상 유일한 치료 선택지로 제시됐다. ACC는 약 15개월 동안 면역치료 비용을 지원했지만, 최근 검사에서 암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치료가 중단됐다.
현재 윈더와 가족은 추가 치료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몇 개월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비급여 의약품 사용도 고려하고 있다.
석면, 강도와 내열성 때문에 광범위하게 사용
석면은 자연에서 채굴되는 광물로, 강도가 높고 열에 강하며 방음 효과가 뛰어난 데다 가격도 저렴해 과거에는 건축과 제조업 전반에서 널리 사용됐다.
19세기 후반 대규모 채굴이 시작되면서 석면은 이른바 '기적의 소재'로 홍보됐다. 건물의 벽과 천장뿐 아니라 다리미판, 커튼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도 사용됐다.

그러나 석면의 위험성은 일찍부터 제기됐다. 1930년 영국 정부 보고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석면 먼지에 노출돼 심각한 폐 질환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60년대 초에는 석면 노출과 폐암 및 중피종의 연관성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그럼에도 석면은 수십 년 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뉴질랜드는 2016년 모든 석면과 석면 함유 제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미 1970~1980년대에 상당량의 석면 건축자재가 수입돼 전국의 주택과 건물에 사용된 상태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섬유가 가장 큰 위험
석면 전문가인 테리앤 베리 부교수는 석면 자체보다 이를 건드리거나 훼손했을 때 발생하는 미세 섬유가 가장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석면이 포함된 자재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잘 관리되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다. 그러나 드릴이나 전동공구로 구멍을 뚫거나 자재를 절단하고, 고압세척기로 표면을 세척하면 미세한 석면 섬유가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다.

이 섬유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호흡을 통해 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체내에 유입된 섬유는 쉽게 제거되지 않으며, 장기간에 걸쳐 폐와 다른 장기의 조직을 손상시킬 수 있다.
특히 장기 주변을 둘러싼 막에 악성 종양이 발생하는 중피종은 예후가 좋지 않은 암으로 알려져 있다.
석면 관련 질환은 일반적으로 노출 후 15~40년이 지나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노출량이 많을수록 위험이 커지지만, 안전하다고 확인된 노출 수준은 없으며 단 한 차례의 심한 노출도 장기적인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WorkSafe의 설명이다.
2000년 이전 주택, 철거·보수 전 석면 검사 필요
WorkSafe는 뉴질랜드에서 2000년 이전에 건축되거나 개조된 건물에는 석면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2000년 이후 건물은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석면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석면은 지붕이나 벽에만 사용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생활공간과 건축자재에서 발견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장소가 포함된다.
오래된 지붕과 외벽 마감재
천장과 벽 내부의 단열 및 방화 자재
비닐 바닥재와 바닥 접착제
창문 주변 패널과 창틀 자재
빗물받이와 배수관
온수기 보관함 내부
오래된 화장실 변기 시트 및 관련 부품
전문가들은 일반 주택에서 석면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는 위치를 23곳까지 확인하고 있다.

베리 부교수는 특히 가정에서 직접 수리하거나 개조하는 DIY 작업자들의 위험을 우려했다. 전동드릴과 절단 공구를 사용하는 작업은 석면 섬유를 대량으로 공기 중에 방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석면 먼지는 집 안에서 이동할 수 있어 작업자뿐 아니라 어린이와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의 조언은 간단하다. “자르거나 뚫기 전에 먼저 확인하라(Check before you chop).”
석면이 의심되는 자재는 직접 손대지 말고 전문 업체에 검사를 의뢰해야 한다. 전문가는 안전하게 시료를 채취해 분석하고, 어떤 작업이 가능한지 또는 어떤 자재를 건드려서는 안 되는지 관리 계획을 마련할 수 있다.
석면 안전교육 부족…기술자 양성 과정 개선 요구
윈더는 석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에 투입된 이후가 아니라 직업교육 단계부터 관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질랜드에서는 고용주에게 작업장 내 석면 위험을 파악하고 관리하며 근로자를 노출로부터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WorkSafe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석면 관련 기소는 8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5건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후 추가로 1건의 석면 관련 기소가 이뤄졌으며 현재 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그러나 윈더는 산업 현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석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위험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기 분야를 대표하는 단체인 마스터 일렉트리션스(Master Electricians)는 현재 자격증 취득 과정 전반을 검토하고 있다며, 석면 인식 교육을 자격 요건과 산업 전반의 교육 과정에 포함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밝혔다.
어린이 놀이용 모래에서도 석면 검출
석면 위험은 오래된 건축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5년 11월 뉴질랜드에서 판매된 색깔이 있는 어린이 놀이용 모래에서도 석면이 검출돼 큰 파장이 일었다. 호주 연구기관의 검사에서 처음 확인된 이후 뉴질랜드에서도 관련 제품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예방 조치로 40곳이 넘는 학교와 유아교육기관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으며, 일부 시설은 오염 제거 작업에 수천 달러의 비용을 부담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최근 안전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판매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2027년 2월 1일부터 14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모래 함유 장난감은 석면이 없다는 검사 결과가 확인돼야 판매할 수 있다.
이 조치는 우선 18개월 동안 시행되며, 기업혁신고용부(MBIE)는 장기적인 관리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리콜 대상 모래 제품 목록은 뉴질랜드 제품안전 웹사이트(Product Safety New Zealand)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를 바꾸지는 못해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윈더는 뉴질랜드 사회가 석면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전국적인 대중 홍보 캠페인과 TV 광고를 통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의 아내 셰리는 24년 동안 함께한 남편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투병이 가족 모두에게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석면의 위험을 미리 알았다면 남편이 해당 업종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두 딸 해나와 앨리사는 아버지가 자신의 건강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더 많은 사람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아버지의 경고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윈더는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기를 바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식을 높인다고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는 분명히 바꿀 수 있습니다. 인버카길의 평범한 한 사람이 작은 물결을 큰 파도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석면은 수입과 사용이 금지됐다고 해서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래된 주택을 직접 수리하거나 개조하려는 사람이라면 작업에 앞서 석면 함유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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