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세계 4위 ‘유류비 급등국’
기름값 부담에 가계 지출도 흔들

1인당 연료비 증가 폭 세계 4위
디젤 가격도 리터당 99센트 상승
연료비 지출 27% 늘었지만 소비량은 12% 감소
대중교통 이용 증가
뉴질랜드가 전 세계에서 1인당 연료비 증가 폭이 네 번째로 큰 국가에 올랐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가계의 유류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등 소비자들의 생활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entre for Research on Energy and Clean Air·CRE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국제 유가 충격으로 전 세계 연료비 부담은 총 4,680억 미국달러(약 8,330억 뉴질랜드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연료비 부담 증가액이 1,600억 미국달러(약 2,850억 뉴질랜드달러)로 가장 컸다. 캐나다가 그 뒤를 이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가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뉴질랜드는 인구 규모를 고려한 1인당 연료비 증가에서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부담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뉴질랜드의 디젤 가격은 국제 분쟁 이전과 비교해 리터당 55미국센트(약 99뉴질랜드센트) 상승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상승 폭이다.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뉴질랜드, 유가 충격에 취약
웨스트팩(Westpac)의 수석 경제학자 켈리 에크홀드(Kelly Eckhold)는 뉴질랜드가 높은 자동차 보유율과 제한적인 대중교통 접근성 때문에 국제 유가 변동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뉴질랜드의 많은 주민이 대중교통망이 잘 갖춰진 대도시 중심부가 아닌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자동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뉴질랜드의 리터당 가격 상승 폭 자체가 모든 국가보다 큰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라오스에서는 디젤 가격이 리터당 약 1미국달러(약 1.78뉴질랜드달러)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부 개발도상국이 정부 보조금으로 연료 가격을 낮게 유지하다가 국제 유가 충격이 발생하면 보조금 조정과 함께 가격을 큰 폭으로 인상하는 구조와 관련이 있다.
반면 뉴질랜드는 연료 가격이 기본적으로 시장 가격을 반영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기름값 지출 27% 증가… 운전은 오히려 줄어
유가 상승은 뉴질랜드 가계의 소비 패턴에도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에크홀드 경제학자는 1인당 연료비 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증가한 반면, 실제 연료 구매량을 추정한 수치는 약 12%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소비자들이 더 많은 돈을 지출하면서도 실제로는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있다는 의미다.
대중교통 이용도 증가했다. 2월 이후 카드 결제 기준 대중교통 관련 지출은 18%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자동차 운행 비용이 높아지면서 일부 시민들이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 수단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에크홀드는 유류비 부담이 가계에 불균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료비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하면서 외식이나 여가, 기타 선택적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 전쟁과 이에 따른 국제 유가 및 연료 가격 상승이 없었다면 뉴질랜드 경제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에 놓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입 의존도 높은 경제 구조도 부담 가중
심플리시티(Simplicity)의 수석 경제학자 샴비엘 이쿱(Shamubeel Eaqub)은 뉴질랜드가 국제 유가 변동에 특히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뉴질랜드가 자동차 연료에 의존하는 데다 수입 상품의 비중도 높아 국제 운송비 상승의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생산된 상품을 뉴질랜드까지 운송하는 비용이 높아지면 연료비 상승이 단순히 주유소 가격에 그치지 않고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 다양한 상품 가격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질랜드 재무부도 중동 지역 분쟁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공급 차질이 국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운송비 상승은 기업의 생산 및 유통 비용을 높이고, 기업들이 이를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뉴질랜드는 사용하는 연료의 90% 이상을 아시아 지역 정유시설에서 수입하고 있어 국제 공급망의 변화에도 민감하다.
휘발유 91 평균 3.51달러… 소비자 부담 지속
주유 가격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Gaspy 자료에 따르면 10월 29일 목요일 기준 뉴질랜드 전국의 91 옥탄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3.51달러로, 최근 28일 동안 3% 상승했다. 디젤 평균 가격은 리터당 3.17달러로 같은 기간 1.46% 올랐다.
목요일은 일반적으로 주유소들이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날임에도 이 같은 가격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체감 부담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91 휘발유는 오클랜드 엡섬(Epsom)의 태즈먼(Tasman) 주유소에서 리터당 3.19달러에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유가 충격, 뉴질랜드 경제 회복에도 걸림돌
이번 유가 상승은 단순한 교통비 인상을 넘어 뉴질랜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기업의 물류 및 운영 비용을 높인다. 특히 생활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과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어려운 지방 거주자들에게 더 큰 압박이 될 수 있다.
이번 CREA 분석은 169개국의 휘발유와 디젤 가격 및 소비량을 바탕으로 국제 분쟁 이전인 1~2월과 이후의 실제 주유소 가격을 비교한 것이다.

연구진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공급 차질과 정유시설 가동 중단 등이 국제 연료 가격 상승의 주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뉴질랜드는 자동차 의존도가 높고 수입 상품 운송에 많은 비용이 드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어 국제 유가 상승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연료비 부담이 장기화할 경우 가계 소비 위축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경제 회복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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