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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위험해서 뉴질랜드에 난민신청”

미국인 20명 이상 난민 신청, 실제 인정 사례도


 

미국 시민권자들이 총기 범죄와 정치적 혼란,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뉴질랜드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이후 뉴질랜드에서 난민 또는 보호 지위를 신청한 미국인은 20명을 넘었으며, 이 가운데 실제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도 확인됐다.

 

다만 뉴질랜드의 난민심사기관은 미국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확립된 국가라는 점을 고려해, 단순히 미국의 총기 폭력이나 정치적 갈등, 환경 문제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는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주목받은 사례는 미국과 요르단 이중국적을 가진 한 남매다.

 

11세 아들과 7세 딸은 어머니가 뉴질랜드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뒤 함께 뉴질랜드에 머물게 됐다. 두 아이의 어머니는 요르단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했으며 두 자녀의 양육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으로 보내지면 다시 요르단으로 돌아갈 가능성

이 남매의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진 핵심적인 이유는 단순히 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 아니었다.


 

뉴질랜드 이민·보호재판소(Immigration and Protection Tribunal)는 아이들이 뉴질랜드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 미국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있고, 미국에서는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로 생활하게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미국 당국이 결국 아이들을 요르단에 있는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려보낼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 경우 아이들이 요르단에서 잔혹하거나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재판소는 판단했다.

 

아이들은 요르단에서 아버지 가족에게 맡겨질 경우 학대와 폭력에 노출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서에 따르면 어머니는 요르단에서 남편의 확대 가족으로부터 하인처럼 취급받았고, 남편과 제대로 지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아이들 역시 가족들로부터 가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형제들이 사소한 잘못을 이유로 아들을 때리고 소리를 질렀으며, 아버지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여동생을 때리거나 통제하도록 부추긴 것으로 기록됐다.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가정폭력

이 가족의 어려움은 요르단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남편이 학생이던 2011년 남편과 함께 뉴질랜드로 왔으며, 처음부터 배우자로부터 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가족이 요르단으로 돌아간 뒤에도 폭력과 학대가 계속됐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온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고, 어머니가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경찰까지 출동했다.

 

뉴질랜드 가정법원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해외로 데리고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어머니는 특히 딸이 요르단에서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 여성은 폭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가치관을 강요받을 것을 우려했다.


 

재판소는 이런 구체적인 위험을 고려해 남매의 난민 신청에 대한 항소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이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

미국인들의 난민 신청이 모두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수 신청은 난민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한 미국 여성은 코로나19와 총기 범죄, 미국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이유로 보호를 요청했다.

 

재판소는 미국이 정치적·사회적으로 분열돼 있고 총기 보유율이 높으며, 특히 극우 성향의 폭력적인 반정부 발언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실제 무력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추측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도 미국에서 상당한 사망자와 입원 환자가 발생한 사실은 있지만, 건강할 권리 자체가 난민협약상 보호받는 권리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이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봤다.

 

“정치적으로 미국과 결별했다고 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미국 남성은 반정부적인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박해받을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환경오염과 핵·유독성 폐기물 사고, 총기 관련 폭력 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소는 이러한 위험이 실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을 인정할 정도로 구체적이거나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소는 신청자의 신념과 뉴질랜드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진심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지만, 난민협약은 자신의 국가가 정치적·도덕적으로 가고 있는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뉴질랜드 거주로 가는 통로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양성애자 유대인 남성의 항소 역시 비슷한 이유로 기각됐다.

 

미국은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 나라라는 판단

뉴질랜드 난민심사에서 미국이 갖는 특별한 위치도 중요한 요소다.


 

과거 재판소의 판단에서는 미국과 같이 법치주의를 일반적으로 존중하는 선진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국가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는 추정이 적용된다는 원칙이 제시됐다.

 

2008년의 한 항소 결정에서도 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에 대해 난민 지위가 성공적으로 인정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이 언급됐다.

 

따라서 미국 내 총기 범죄가 심각하거나 정치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미국인을 난민으로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법적 판단 흐름이다.

 

총기 폭력부터 경찰 문제까지 다양한 사유

공개된 사건들을 보면 미국인들이 제기한 난민 신청 사유는 상당히 다양하다.


 

총기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주장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환경오염이나 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대 의견을 이유로 든 사례도 있었다.

 

한 남성은 자신이 내부고발자로서 위협을 받고 있으며, 미국으로 돌아가면 허위 범죄기록 때문에 즉시 체포되고 구금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68세 여성은 미국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살해했고 자신까지 죽이려 했다고 믿었지만, 재판소는 정신건강 문제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서 난민 요건을 인정하지 않았다.

 

42세 남성은 경찰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Occupy 시위 과정에서 불법 캠핑 혐의로 체포됐으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 때문에 비판받았다고 주장했다.


 

난민제도가 취업비자 우회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이번 사례는 뉴질랜드의 난민제도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과도 연결된다.

 

난민 신청자 가운데는 실제로 안전과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지만, 법적으로 난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이민부 장관 Erica Stanford는 지난 3월 난민 신청 가운데 상당수가 근거가 충분하지 않으며, 일부 신청자는 본국에서 박해를 받을 위험 때문이 아니라 뉴질랜드에 계속 머물고 일할 수 있는 오픈 워크비자(open work visa)​를 얻기 위해 난민 신청을 한다고 지적했다.

 

즉, 난민 신청이 체류와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우려다.


 

뉴질랜드 난민 신청자는 주로 인도·중국 출신

미국인의 난민 신청 증가가 눈길을 끌고 있지만 뉴질랜드 전체 난민 신청에서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매우 작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난민 신청이 가장 많은 국가는 인도와 중국으로, 지난해 기준 각각 683명과 336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최근 3년 동안 미국 외에 비교적 이례적인 신청 국가로는 아일랜드 6명, 일본 5명 등이 있었다.

 

영국 국적자의 경우 1997년 이후 난민 항소를 제기한 사례가 7건 있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는 자메이카계 영국인이 자신의 자메이카 혈통과 Windrush 사건 때문에 무국적 상태와 구금, 차별을 겪었다고 주장했지만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미국인 남매 사례가 보여주는 중요한 점은 “미국이 위험한 나라냐”가 아니라, 해당 개인이 실제로 박해나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내 총기 범죄, 정치적 양극화,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일반적인 불안만으로는 난민 지위를 얻기 어렵지만, 이번 남매처럼 제3국으로 강제 송환될 경우 구체적인 폭력과 학대에 노출될 위험이 입증된다면 미국 국적자라 하더라도 뉴질랜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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