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서 중의 별서
- WeeklyKorea
- 6월 8일
- 2분 분량

‘석파정도’는 도화서 최고 화사인 자비대령화원 이한철이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을 그린 그림이다. 윗부분에 도성을 내려다보는 산봉우리를, 아래에는 평화로운 민가를 그려 석파정을 둘러싸게 한 거대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병풍으로 장황(粧潢)했고, 여러 소장자를 거쳐 현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직접 대면하기 어려운 이 그림을 구글에서 고해상도 이미지로 찾았다. 그런데, 현재의 석파정과는 달랐다. 어느 학자는 진경산수를 그리는 당시 화풍의 특성상 실제와 매우 흡사할 것이므로 석파정의 과거 모습을 이 그림에서 확인할 것이라 하고, 어느 학자는 흥선대원군의 여러 사저들을 검토해보건대 석파정의 미래 모습을 예상하고 그린 상상도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지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의뢰자와 화가,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대부의 별서정원
별서는 보통의 사저가 아닌 경치 좋은 명승지에 은일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지은 정자나 작은 집을 말한다. 별서정원(원림)은 사대부가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었던 분야였다. 은둔과 회합을 위한 가옥과 완상과 소요를 위한 정원은 자연과 나를 둘러싼 완벽한 하나의 세계였다. 그런데 세도를 누리던 고위층의 별서는 소박함이나 은일과는 거리가 멀었고, 정치적 회합을 목적으로 궁궐 주변에 자리하곤 했다.
당시의 별서정원은 특권층만이 향유한 문화적 행위였고, 석파정은 문화 권력을 두고 왕실과 유력가문의 대결이 벌어졌던 곳이다. 석파정은 원래 안동김씨 가문의 별서정원으로 삼계동정사라 불리며 정치와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니 고종을 왕위에 올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입장에선 삼계동이 얼마나 탐탁지 않았을까.
이 집의 매수에 실패한 이하응은 고종을 일부러 이곳까지 행차하게 했다. 임금이 머문 곳은 임금의 소유가 되는 오랜 관행에 따라 주인인 김흥근은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뜻을 이룬 이하응은 자신의 호를 붙여 석파정이라 했지만 한동안 이 집은 옛이름 그대로 삼계동이었다.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문화적인 호응까지 단박에 얻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응의 직계 자손들에게 상속된 석파정은 1948년에 민간에 매각되었고, 지금은 누구나 서울미술관에서 티켓을 사면 석파정에 출입할 수 있다. 문화전쟁의 승패, 권력층의 흥망성쇠 따위는 잊고서 오로지 정원을 거닐고 풍경에 젖어들면 된다. 깊은 숲이 감싸 안은 넉넉한 장소에는 천년을 바라본다는 천세송 노거수도 있고, 글자가 새겨진 너럭바위도 있고, 중국풍의 정자도 있다. 휘돌아 나오는 물길은 그 양이 충분치 않으나 차갑고 도도하여 기분이 청명해진다.

기단을 높이 올려 세운 사랑채는 그 옆에 자리한 거대한 소나무 천세송이 주인인 듯하고, 높은 곳에서 우아하게 자리를 잡고 풍경을 내려다보는 안채는 바람만이 오래 머물다 간다. 크고 잘 지어진 한옥은 창덕궁 후원에 고즈넉하게 숨어있는 연경당을 떠올리게 한다. 사대부가를 흉내 내었다고 알려진 연경당에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은 많으나 석파정처럼 멋진 노거수는 보지를 못했다. 길상문이 가득 그려진 꽃담과 복(福) 자를 아로새긴 벽돌벽, 안쪽과 바깥쪽을 연결하는 홍예문은 운현궁의 재현으로 본다.
‘석파정도’의 중앙부를 자세히 보면 벽돌 건축물이 하나 그려져 있다. 동그란 창을 낸 건물은 중국 색채가 느껴지는데, 김홍도가 말년에 그린 자신의 거처에도 닮음직한 건물이 있었음을 떠올려보면 당시에는 이런 벽돌 건물이 불쑥불쑥 존재했었구나 싶다.
소(小) 궁궐처럼 꾸며진 석파정의 가장 은밀한 곳에 별도의 담으로 둘러싸인 별당은 어떤 비밀을 가진 장소 같다. 벽돌 건물을 두고 당대 누가 평하기를 감옥이라 한 것처럼 단단하고 어둡고 깊은 감각은 은일의 장소로 삼기에 충분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진짜 주인은 이 별당이 아닐까?
석파정 별당은 원래 자리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산의 경사면으로 옮겨졌다. 일본인의 소유가 된 세한도를 우리나라로 되찾아온 서예가 손재형이 자신의 집 뒤로 옮겼다 한다. 어쩐지 세한도에 그려진 동그란 창의 작은 집과 닮았다. 그러니 ‘별서 중의 별서’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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