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영혼과 간식의 문제
- WeeklyKorea
- 6월 28일
- 3분 분량

해외로 나가는 발이 묶이고 나서 아쉬운 여행지는 숱하게 많지만, 타이난(臺南)에 대한 그리움은 다른 곳들과 확연한 차이점을 갖는다. 나는 타이난을 두 개의 문장으로 기억한다. ‘나의 영혼은 나에게 속한다.’ ‘나의 추억은 언제나 골목과 관련되어 있다.’
이 문장들은 타이난의 한 호텔방 창문에 새겨져 있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한자를 동행이 해석해준 그대로 옮겨보면 그랬다. 영혼과 골목은 분명 통하는 데가 있다. 골목에서 보고 듣고 맛본 것들은 지금껏 이어져온 도시의 시간과 기억과 습관의 산물이고, 이는 영혼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무방하다.
영혼과 골목의 문장은 타이난 출신의 대만 문학가 예스타오(葉石濤, 1925-2008)가 남긴 것이다. 골목 문장의 뒷줄에는 이런 내용이 따라온다. ‘수많은 기쁨과 슬픔이 모두 이런 골목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골목에서 도시의 영혼을 발견하는 그런 여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바로 그때였다. 그래서 그런 영혼을 알아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타이난의 영혼은 샤오츠라고.
샤오츠(小吃: 작은 먹거리)는 작은 그릇에 담긴 한입거리 간식이다. 길거리 음식도, 번듯한 레스토랑 음식도 작은 그릇에 나오는 샤오츠로 구성된다.
한두 접시는 기본이며 여러 접시를 흡입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수많은 메뉴를 자랑한다. 미식여행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도 간식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저 입을 즐겁게 해주는, 그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그저 귀엽고 순간적인 만족을 주는 작은 먹거리는 여행의 자양강장제가 아닐까?

맛있다는 감각은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타이난에서 나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허름하게 낡았지만 삶의 이유를 분명히 드러내는 골목에서, 더운 나라 특유의 느린 호흡과 정적의 시간을 겪으며, 하루 종일 차를 마시고 시시때때로 간식을 찾아먹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뾰족하게 벼려진 마음의 모서리들이 물렁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그들 옆에 앉아 작은 접시에 담긴 입에 착착 붙는 소박한 음식을 몇 접시나 비우고 음료컵이 담긴 길쭉한 비닐봉지를 손목에 걸고 다녔다. 먹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한국인만은 아니었다. 타이난 사람들이 그랬다.
섬나라 대만의 남쪽에 자리한 타이난(臺南)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가장 오랫동안 수도로 활약했던 곳이다. 타이베이는 19세기부터 대만섬의 중심지가 되었을 뿐, 그 이전까지 대만의 역사는 타이난에서 이루어졌다.
대만 문화의 원류인 동시에 대만 음식의 모태가 된 곳이다. 음식에 있어 타이난은 넘치도록 풍부하다. 해산물, 육류, 채소, 과일 등 식재료가 풍부하고 저렴한데다 미각에 있어서 타고난 타이난 사람들은 맵고 달고 짜고 시고 쿰쿰하고 담백한 모든 장르의 양념을 총동원하여 요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대만 사람들 사이에서도 타이난에 간다는 건 ‘미식여행’으로 통한다.


음식에 진심인 샤오츠의 나라
타이난을 고도(古都) 경주에 비유하는 책도 있으나 두 도시가 닮은 점은 오로지 옛 수도라는 점뿐이다. 16세기 이전의 타이난은 선사시대처럼 까마득하다. 분명 중국색이 강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섬의 영혼은 중국의 얼굴이기도 하고, 청일전쟁 직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이기도 하며, 오래 전 역사 속의 네덜란드 혹은 스페인이기도 하다. 먼먼 기억 너머로부터 명맥을 이어온 원주민인 고산족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민족의 침입과 점령, 그로 인한 문화의 뒤섞임은 건축으로, 언어로, 그리고 음식으로 그 흔적을 남겨놓았다. 타이난의 샤오츠는 서로 다른 문화들이 침투하고 응용되고 뒤섞인 결정적인 장면인 셈이다.
깊은 단맛과 폭발하던 감칠맛, 아삭아삭 씹히는 신선한 감각, 보들보들하고 촉촉한 맛의 향연. 나는 수많은 샤오츠를 맛보며 수많은 영혼과 영접했다.
갈아낸 무와 전분을 섞어 쪄낸 무떡과 찻물에 담가 오래 끓인 달걀인 차예단은 꽤 좋아하게 되었으나 흐물흐물하고 느끼한 곱창국수나 장어볶음을 넣은 샌드위치는 도전정신이 필요한 음식이었다. 튀긴 취두부와 오리머리탕국 같은 하드코어까지 가지 않아도 이곳엔 충분히 즐길 거리가 많다.
먹는 데 진심인 타이난에서도 최고로 꼽는다는 오징어쌀국수는 진정 최고의 승자다. 작은 오징어 한 마리가 턱 얹힌 것 말고는 잘게 썬 샐러리 조금이 고명의 전부지만 툭툭 끊어진 국수를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다보면 감칠맛 나는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우게 된다. 역시 국수문화의 최고봉은 맑은 국수다.

그 자리에서 싱싱한 과일을 깎아 먹음직하게 담아내는 과일가게도 놓쳐서는 안 된다. 어찌나 과즙이 달고 향이 풍부한지 열대과일이 밍숭밍숭 맛없다는 편견은 대체 어디서 왔나 의문을 갖게 되었다. 식후 과일 한조각의 습관은 일본점령기에 시작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국민간식은 두부푸딩 더우화(豆花)다. ‘콩꽃’이라는 한자를 발견하게 되면 무조건 들어가 보길. 부들부들하고 달콤하며 매끄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더우화는 대만인의 감수성과 일치하는 바가 있다.
타이난 출신의 유명 작가 예스타오가 샤오츠를 언급하지 않았을 리 없다. “타이난 사람들은 샤오츠를 즐기는 취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보수적이며 큰 야망 없이 단지 평화롭게 살고자 하며 맛있는 샤오츠를 먹을 여유가 있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예스타오 선생은 어떤 샤오츠를 가장 좋아했을까? 나는 괜히 그런 걸 궁금해하며 타이난에 다시 가볼 날을 기대하고 있다.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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