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부족에 “환자 목숨 잃을 수도”
지방 응급실, 의사 부족에 붕괴 경고

말버러 와이라우병원 응급실 전문의 11.4명 필요하지만 실제 8명뿐
의료진 “5년째 증원 요구에도 달라진 것 없어”
남섬 말버러(Marlborough) 지역의 주요 응급의료기관인 와이라우병원(Wairau Hospital) 응급실이 심각한 의료진 부족으로 위기에 놓였다는 경고가 나왔다. 응급실 전문의들은 수년간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다며,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환자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TVNZ의 1News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블레넘(Blenheim)에 있는 와이라우병원 응급실의 선임 의사들 가운데 약 절반이 인력 부족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들은 응급실 운영이 사실상 한계에 다다랐으며, 의료진의 과도한 업무 부담이 환자 진료의 질과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임 응급의학과 의사 케이 홀(Kay Hall)은 “우리는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취지로 호소했다. 니키 롤턴(Nikki Rolton) 의사는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환자가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요한 전문의 11.4명인데 실제 근무 인원은 8명
와이라우병원은 인구 약 5만 명에 가까운 말버러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 인구의 고령화까지 고려하면 응급의료 수요가 적지 않지만, 의료진은 이를 감당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병원의 응급실 근무표는 선임 의사 11.4명의 전일제 환산 인력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지만, 실제 근무 인원은 8명에 그쳤다. 계획된 인력과 실제 인력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의료진은 이러한 인력 부족이 단순히 업무량을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근무조에 필요한 의사를 확보하지 못하면 일부 근무가 공석으로 남을 수 있고, 남아 있는 의료진이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언 먼로(Ian Munro) 의사는 진료 지침상 10분 이내에 평가해야 하는 환자도 실제로는 약 30분을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응급실에서는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진료 우선순위를 정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면 필요한 시점에 환자를 평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임시 의사에 의존하는 구조…“정규직 채용이 더 지속 가능한 해법”
와이라우병원 응급실은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단기간 근무하러 오는 임시 의사, 이른바 로컴(locum)에 상당 부분 의존해 왔다.

그러나 임시 의사를 항상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당 보수뿐 아니라 항공료와 숙박비, 렌터카 등 추가 비용도 발생한다. 의료진은 이러한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정규직 자리를 채울 예산이 없다는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롤턴 의사는 임시 의사를 고용할 재원이 있다면 왜 상시 근무할 의사를 채용할 예산은 마련할 수 없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장기간 와이라우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해 온 스튜어트 워치먼(Stuart Watchman) 의사도 인력 부족이 지속되면 의료진이 더 빠르고 더 많은 일을 처리하려고 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개인의 헌신과 노력만으로 구조적인 인력 부족을 계속 메우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응급실로 몰리는 환자…지역 의료 인프라도 한계
인력 부족 외에도 지역 의료서비스 전반의 부담이 응급실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실 인근의 긴급진료시설(urgent care) 역시 인력 문제를 겪으면서 운영시간이 단축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긴급진료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리면 이미 인력이 부족한 응급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와이라우병원 응급실은 하루에 1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의 의료 역량에도 한계가 있다. 와이라우병원에는 독립적인 중환자실(ICU)이 없으며, 심장 전문의와 이비인후과 등 일부 전문 진료과도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응급실 의료진이 다양한 질환과 중증 환자를 폭넓게 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까지 고려해야 한다.
홀 의사는 지역 응급실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대형 병원에 비해 업무 범위가 넓고 책임과 부담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선임 의사 절반가량 은퇴 고려…인력 공백 더 커질 수도
의료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의 인력 전망이다. 현재 응급실 선임 의사 가운데 약 절반이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워치먼 의사는 와이라우병원 응급실에서 약 29년간 일해 왔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만, 앞으로도 무기한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러 의사가 한꺼번에 떠난다면 남은 인력으로 응급실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홀 의사 역시 응급실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걱정했고, 먼로 의사도 의료진의 표현을 빌려 응급실이 위기의 문턱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의료진이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은 이러한 문제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력 부족과 업무 부담에 대한 우려를 수년간 제기했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보건당국 “정규직 의사 충원”…현재 붕괴 위기라는 평가는 부인
논란이 확산하자 뉴질랜드 보건당국인 헬스 뉴질랜드(Health New Zealand)는 응급실에 정규직 의사를 추가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넬슨·말버러 지역 운영을 담당하는 필 휘블(Phil Wheble) 그룹 운영책임자는 1News와의 인터뷰에서 응급실이 임시 의사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정규직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지속 가능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휘블 책임자는 정규직 의사 채용 방침이 언론의 질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검토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응급실이 현재 붕괴 직전에 있다는 의료진의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이 그 지점까지 악화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당국은 지방 소도시에서 의료진을 유치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응급실과 다른 진료서비스를 함께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고, 젊은 의사들을 훈련한 뒤 지역에 계속 머물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휘블 책임자는 현장 의료진의 의견을 듣고 함께 해결책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번 보도에서는 구체적인 추가 채용 인원과 완료 시점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지방 응급의료 문제, 인력 숫자만으로 해결될까
이번 사안은 한 병원의 인력 부족을 넘어 뉴질랜드 지방 의료체계가 직면한 과제를 보여준다. 대도시보다 의료인력 확보가 어려운 지역에서는 정규직 의사를 안정적으로 채용하고 장기간 근무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임시 의사 고용은 갑작스러운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를 상시적인 운영 방식으로 유지하면 비용 부담과 인력 확보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정규직 인력을 늘리려면 경쟁력 있는 근무조건과 충분한 지원, 전문성 개발 기회 등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또한 긴급진료시설과 병원 응급실의 역할을 조정하고, 다른 지역 병원과의 전원 체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응급실 인력을 늘리는 것과 함께 지역 전체의 의료 수요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말버러 지역 의료진의 호소에 보건당국이 정규직 의사 충원으로 답한 만큼, 앞으로 실제 채용이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되는지, 근무 공백과 대기시간이 줄어드는지, 의료진의 은퇴를 막고 새로운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관전 지점이 될 전망이다.
환자가 적시에 진료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 체계는 지역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의료진의 경고가 반복되는 데 그치지 않도록 구체적인 인력 확충과 지속 가능한 운영 대책이 뒤따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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