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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밀 응급실서 오진 발생했다면, 책임은?

The New Zealand Nurses Organisation is campaigning for enforceable safe staffing levels.
The New Zealand Nurses Organisation is campaigning for enforceable safe staffing levels.

병원 응급실(ED)의 과밀화와 인력 부족이 계속되는 가운데, 응급실에서 발생한 의료 사고의 책임을 개인 의료진에게만 물어야 하는지, 아니면 사고를 초래한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보건·장애인위원회(HDC)가 공개한 한 사건은 이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응급실은 수용 능력의 200%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간호사는 정원보다 10명 부족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슴 중앙에 타는 듯한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은 55세 남성은 처음에 심장 문제가 아닌 것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심전도(ECG) 검사가 이뤄진 것은 응급실 도착 후 무려 4시간 30분이 지난 뒤였다. 검사 결과 그는 심장마비를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후 긴급히 심장 전문팀에 의뢰됐다.


 

Health NZ의 자체 조사에서는 환자에게 더 긴급한 분류 등급을 부여했어야 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당시 응급실의 극심한 과밀과 인력 부족 역시 사고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의료진의 판단 실수인가, 아니면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낸 사고인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응급실 200% 가동률, 간호사 10명 부족

응급실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누가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곳이다.

 

특히 트리아지(triage·응급환자 분류)를 담당하는 간호사는 제한된 시간 안에 환자의 증상과 병력 등을 확인하고 긴급도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가슴 통증의 경우 환자의 설명만으로 심장 질환인지, 소화불량과 같은 비교적 덜 심각한 문제인지를 즉시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환자마다 증상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빨리 진료받기 위해 통증을 더 심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증상을 축소해 말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판단이 환자가 넘쳐나고 의료진이 부족한 환경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해당 환자는 처음 분류된 등급에 따라 30분 이내 진료를 받았어야 했다. 만약 실제로 그 시간 안에 의사의 진료를 받았다면, 초기 분류가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심장마비 진단과 치료가 4시간 이상 지연되는 결과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즉, 최초의 판단 오류와 실제 치료 지연은 반드시 같은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환자를 더 긴급하게 분류할 수도 없다”

이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간호사들이 한 명 한 명의 환자를 더 오랫동안 평가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환자로 가득 찬 응급실에서 트리아지 평가 시간을 늘리면 전체 진료 속도가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혹시라도 심각한 환자를 놓칠 위험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환자에게 높은 긴급 등급을 부여하는 이른바 ‘방어적 트리아지(defensive triage)’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해결책이 아니다.

 

너무 많은 환자가 긴급 환자로 분류되면 정작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다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 문제는 개인 간호사의 판단 능력만이 아니라 너무 많은 환자와 너무 적은 의료진이라는 구조적 불균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Health NZ와 HDC, 같은 사건을 다르게 바라보다

사건 이후 Health NZ는 자체적인 adverse event review(의료 이상사건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환자의 초기 분류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권고 사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 트리아지 간호사에 대한 추가 교육

  • 응급실 수용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의 단계적 대응 절차 마련

  • 추가 인력 확보

  • 대기실 간호사 배치


 

즉, 단순히 “누가 잘못했는가”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으며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반면 HDC의 조사에서는 Health NZ가 Health and Disability Services Consumers’ Rights Code를 위반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HDC 역시 응급실의 과밀과 간호 인력 부족을 고려했지만, 최종적으로는 환자의 증상을 심장 질환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 점, 적절한 트리아지 등급을 부여하지 못한 점, 그리고 적시에 진료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더 큰 비중을 뒀다.

 

두 조사 모두 문제점을 발견했지만, 한쪽은 시스템 개선에, 다른 한쪽은 권리 침해와 책임 판단에 보다 무게를 둔 셈이다.

 

사고가 난 의료진도 ‘두 번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환자가 피해를 입은 의료 사고에서 환자의 피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의료 사고에 연루된 의료진 역시 심각한 정신적·직업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뉴질랜드에서 HDC 민원을 경험한 의사와 간호사, 조산사 1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조사 과정이 의료진의 정신적 건강과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계속 의료 현장에서 일할 의지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 번째 피해자(second victim)’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는 의료진의 실수를 면책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환자가 입은 피해가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하지만, 사고에 연루된 의료진 역시 심각한 심리적 충격과 직업적 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미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조사와 비난 과정에서 소진돼 현장을 떠난다면, 장기적으로 의료 시스템 전체의 인력난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책임 추궁”에서 “재발 방지”로?

Health and Disability Commissioner 제도는 1996년 출범했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공공 의료 서비스 기준이나 체계적인 의료 질 개선 시스템이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후 뉴질랜드의 의료 안전 관리 환경은 크게 변화했다.

 

Health Quality & Safety Commission의 출범과 함께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개인의 잘못을 찾는 것뿐 아니라,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분석하고 의료 시스템 전체를 개선하는 방식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다.

 

현재 국가 이상사건 정책(National Adverse Events Policy) 역시 ‘치유, 학습, 개선(healing, learning and improvement)’을 핵심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공정하게 지원하면서 재발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접근이다.

 

이번 사건에서 Health NZ의 자체 조사는 이러한 방향에 비교적 가까웠다.

 

반면 HDC 조사는 일반적으로 의료 기록과 서면 진술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환자와 의료진이 직접 만나 사건과 피해, 개선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의 최종 결정은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나서야 공개됐다.

 

이처럼 긴 조사 기간이 환자에게 실질적인 해결을 제공하는지, 또는 의료진에게 지나치게 오랜 불확실성을 안기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같은 사건을 두 번 조사해야 하나

이번 사례에서는 Health NZ가 이미 자체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책을 제시한 뒤, HDC가 별도로 조사를 진행해 추가 권고를 내렸다.

 

이 때문에 두 시스템의 역할이 일부 중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 기관은 시스템 개선을 추진하고, 다른 기관은 책임과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각각 의미가 있다.

 

하지만 두 과정이 더 효과적으로 연계된다면 환자는 더 빠른 답을 얻고, 의료진과 병원 역시 재발 방지 대책을 보다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인 책임과 시스템 책임, 함께 봐야 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개인의 책임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심장마비를 겪고 있었음에도 수 시간 동안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지연된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의료진과 의료기관은 환자에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응급실이 정원의 두 배에 달하는 환자를 수용하고 있고, 필요한 간호사보다 10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 판단 오류를 개인의 잘못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논의의 핵심이다.

 

의료 사고의 책임은 ‘누가 잘못했는가’를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왜 그런 환경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의료 시스템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판단 오류에만 국한하지 않고 과밀한 응급실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 업무 환경 등 구조적 문제까지 함께 개선하는 데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누구의 잘못인가?”가 아닐 수 있다.

 

“다음 환자에게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과밀 응급실에서 발생한 한 건의 의료 사고는, 지금 뉴질랜드 의료 시스템이 마주한 이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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