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낯설게 느껴진다”… 치매 환자를 위한 주택
작은 변화가 안전 바꾼다

전국에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약 8만3000명에 이르는 가운데, 치매 환자들이 집 안에서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 공간을 바꾸는 방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치매 환자를 위한 주택 개조가 반드시 큰 비용이 드는 공사나 새 집을 짓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바닥의 색상과 무늬를 바꾸거나, 수도꼭지와 전등 스위치의 색상 대비를 높이는 등 간단한 변화만으로도 생활 공간을 보다 쉽게 인식하고 이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오클랜드대학교의 Centre for Co-Created Ageing Research는 알츠하이머 뉴질랜드(Alzheimer’s New Zealand), 건축 전문가, 노인 돌봄 종사자 및 치매 당사자들과 함께 치매 친화적인 주거환경을 위한 실용적인 지침을 마련했다.
익숙했던 집도 치매 환자에게는 달라 보일 수 있어
치매는 기억력뿐 아니라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따라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던 물건이나 공간이 치매 환자에게는 혼란스럽거나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두운 색상의 현관 매트가 바닥에 생긴 구멍처럼 보이거나, 무늬가 복잡한 카펫이 울퉁불퉁한 장애물처럼 인식될 수 있다.
평범한 의자 역시 주변 바닥이나 벽과 색상이 비슷하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아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깊이와 거리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계단이나 문턱, 바닥의 변화 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넘어질 위험도 커질 수 있다.

바닥은 단순하게, 필요한 곳에는 색상 대비
연구진은 치매 환자를 위한 공간에서는 일관된 색상과 단순한 디자인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닥에 지나치게 복잡한 패턴이나 갑작스러운 색상 변화가 있으면 장애물이나 깊이의 변화로 잘못 인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필요한 시설에는 적절한 색상 대비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벽과 바닥의 색상을 다르게 하면 방의 경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바닥과 대비되는 색상의 의자를 사용하면 의자의 위치를 보다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화장실 역시 문에 간단한 그림이나 표시를 사용하는 방법이 제시됐다.
수도꼭지와 전등 스위치도 중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시설의 색상 대비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흰색 세면대에 검은색 수도꼭지를 설치하면 은색 수도꼭지보다 눈에 잘 띌 수 있다.
전등 스위치 역시 벽과 비슷한 색보다는 주변과 대비되는 색상을 사용하면 위치를 찾기 쉬워진다.
이 같은 변화는 반드시 대규모 리모델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됐다.

발밑의 물건 치우고 거울도 점검해야
집 안 통로에 무릎 아래 높이의 물건이 놓여 있다면 치우는 것도 중요하다.
낮은 가구나 물건은 보행 중 걸려 넘어질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 역시 상황에 따라 점검이 필요하다. 일부 치매 환자에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나 주변 이미지가 혼란이나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어 필요하다면 거울을 가리거나 위치를 조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신 제품이 항상 치매 환자에게 더 편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터치스크린 방식의 최신 가전제품보다 전통적인 손잡이나 단순한 조작 장치가 사용법을 이해하기 쉬운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과 햇빛도 중요한 단서
치매 친화적인 공간에서는 실내 디자인뿐 아니라 자연환경과의 연결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치매 환자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에 햇빛의 변화나 날씨, 계절의 변화가 하루와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창문을 통해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거나 외부 공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생활환경을 보다 편안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Māori 관점도 반영
이번 지침에는 뉴질랜드의 Māori 관점에서 치매를 바라보는 Kaupapa Māori Framework도 포함됐다.
여기에는 정신성과 영적인 측면을 의미하는 wairuatanga, 가족과 관계를 뜻하는 whanaungatanga, 이해를 의미하는 māramatanga, 돌봄과 환대를 의미하는 manaakitanga 등의 원칙이 반영됐다.
또한 집 자체의 생명력과 의미를 뜻하는 mauri ora o te whare, 토지와 자연환경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mauri ora o te whenua도 고려됐다.

연구진은 치매 환자의 삶을 지원하는 주거환경은 단순히 사고를 예방하는 공간을 넘어,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와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2050년에는 환자 수 거의 두 배로 전망
현재 뉴질랜드에서는 약 8만3000명이 치매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이 숫자는 2050년까지 거의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치매 환자의 상당수는 요양시설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계속 생활하기를 원하거나 실제로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기존 주택을 안전하고 이해하기 쉬운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반드시 비싼 리모델링을 요구하지 않는다.
혼란을 줄 수 있는 매트를 치우고, 복잡한 바닥 무늬를 줄이며, 의자나 수도꼭지·전등 스위치가 주변 환경과 쉽게 구별되도록 만드는 것만으로도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치매 친화적인 집은 반드시 새로운 집일 필요가 없다.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을 치매 환자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보고 작은 부분부터 바꾸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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