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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왜 NZ보다 임금이 더 빨리 오를까

뉴질랜드, “물가는 4.1% 올랐는데 임금은 2%뿐”


Wages are growing faster in Australia - a law change in NZ could fix that. (Source: 1News)
Wages are growing faster in Australia - a law change in NZ could fix that. (Source: 1News)

 

근로자들의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급여와 임금은 2% 상승하는 데 그친 반면, 물가는 4.1% 올라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호주는 같은 기간 임금이 3.2% 상승하고 물가는 3.8% 상승해, 여전히 생활비 부담은 존재하지만 우리보다 임금과 물가의 격차가 훨씬 작았다.

 

전문가들은 이 차이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노사 임금협상이 결렬될 경우 정부의 독립기관이 개입해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는 호주의 제도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장기간 임금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문제를 줄이고,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로나 이후 이어진 ‘실질임금 후퇴’

최근 우리는 임금이 오르더라도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임금이 2% 올랐지만 생활비와 물가가 4.1% 상승했다면, 실제 구매력은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급여 명세서상 숫자는 늘었지만, 식료품과 주거비, 공과금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비용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가계가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오클랜드대학교 상법 부교수인 앨런 토이(Alan Toy)는 뉴질랜드와 호주의 임금 상승률 차이 가운데 하나가 집단 임금협상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호주 역시 근로자들이 생활비 상승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뉴질랜드보다 임금과 물가 사이의 격차가 작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호주는 협상 결렬되면 공정근로위원회가 개입

호주는 2022년부터 집단 임금협상이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노사 간 입장 차이가 너무 커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판단될 경우, 호주의 Fair Work Commission(공정근로위원회)​이 개입할 수 있다.

 

이를 ‘난항에 빠진 협상(Intractable Bargaining)’ 제도라고 부른다.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공정근로위원회는 Intractable Bargaining Declaration, 즉 협상 교착 선언​을 내릴 수 있다.


 

이 선언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고려된다.

 

  • 단체협약 협상이 최소 9개월 동안 진행됐을 것

  • 노사 어느 한쪽이 공정근로위원회의 개입을 요청했을 것

  • 최종적인 단체협약에 도달할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을 것

  • 모든 협상 대표자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위원회 개입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될 것

 

협상 교착 선언이 내려지면 노사 양측은 일정 기간 다시 합의를 시도하게 된다. 이 기간에는 파업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 안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공정근로위원회가 직접 개입해 단체협약의 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


 

즉, 협상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종적인 ‘심판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우리도 제도는 있지만 사실상 사용하기 어려워

우리도 강제중재와 비슷한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Employment Relations Act 2000의 Section 50J에는 단체협상이 심각하게 교착된 경우 일정 조건 아래에서 외부 개입을 허용하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실제 적용 조건은 상당히 엄격하다.

 

우리는 단순히 노사 간 의견 차이가 크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한쪽이 성실협상 의무(good faith)를 위반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하며, 그 위반이 협상을 심각하고 지속적으로 훼손했다는 점도 증명해야 한다.


 

또 다른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모두 시도했으며, 강제중재가 사실상 유일하게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점까지 입증해야 한다.

 

이처럼 문턱이 높다 보니 Employment Relations Act가 시행된 약 26년 동안 실제로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뉴질랜드의 현행 제도가 존재는 하지만 실제 임금협상의 교착 상태를 해결하는 데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호주는 ‘누구 편’이 아니라 협상 자체를 끝내는 장치

호주의 제도는 근로자에게만 유리한 제도라는 의미도 아니다.

 

협상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원인이 반드시 고용주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4년 호주에서 진행된 한 사례에서는 고용주와 United Workers Union 간의 장기간 협상 끝에 협상 교착 선언이 내려졌다.

 

당시 노조는 제안된 협약을 세 차례나 비준하지 못했고, 결국 공정근로위원회는 협상이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강제중재 제도가 고용주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노사 어느 한쪽이 비현실적인 입장을 고수해 협상이 계속 막힐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노사 양측 모두에게 합리적인 협상 태도를 유지하도록 압박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재기관이 결정할 수 있다”는 압박

이 제도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실제로 공정근로위원회가 모든 협상을 대신 결정하는 데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노사 양측 모두 협상이 완전히 결렬될 경우 독립적인 기관이 최종 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협상 초기부터 지나치게 극단적인 요구를 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양측 모두 “중재기관에 넘기기 전에 직접 합의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구조가 장기간의 협상 교착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보다 현실적인 임금협상을 유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앨런 토이 부교수는 호주의 제도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상승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우리도 노사 모두가 협상이 완전히 막힐 경우 독립기관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타협점을 찾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 문제, 단순히 ‘더 올려달라’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와 호주의 임금 상승률 차이를 단 하나의 법률이나 제도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노동시장 상황, 산업 구조, 인력 부족 여부, 물가와 기업의 수익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임금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뉴질랜드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임금 인상 속도보다 생활비 상승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다.

 

임금이 오르더라도 실제 생활 수준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소비 여력은 줄어들고, 가계는 점점 더 큰 부담을 받게 된다.

 

특히 집단협약이 적용되는 산업에서는 협상이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지연될 경우 그 기간 동안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 불확실성을 안게 된다.


 

이 때문에 호주처럼 협상 교착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제도적 장치를 우리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앞으로 힘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임금 협상법’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임금 상승률이 물가를 계속 따라가지 못한다면 근로자들의 실질소득 감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호주의 사례는 장기간 이어지는 노사 갈등을 단순히 방치하는 대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독립적인 기관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협상 자체를 진전시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 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강제중재가 확대될 경우 노사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6년 동안 사실상 두 번밖에 활용되지 못한 현행 제도가 실제 협상 교착을 해결하는 데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결국 이번 논의의 핵심은 단순하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임금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임금 결정 시스템 역시 지금의 경제 현실에 맞게 바뀔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호주의 사례가 우리의 임금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노사 협상이 끝없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고, 보다 신속하고 현실적인 합의를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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